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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an 26. 2021

"모험기"라고 쓰고 "탈출기"라고 읽어야하는 미국고전

| 2021-003 |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먼저 내가  책이 불편했던 가장  이유는 바로 등장하는 흑인의 말을 방언으로 묘사해놓았다는  때문이었다.

[ 어이___ 누구냥께? 어디 있는 거여?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기는 났는디 말이여. 옳지, 어떻게 할낀지 알았지라우. 이렇게 하면 되겄제. 내 여기 주저앉아서 다시 한번 그 소리를 들을 때꺼정 귀를 기울이고 있을 거구먼. ]


변역가가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원서 자체에서 흑인의 말이 다르게 표현되어있는지 찾아보았다.


위 번역본의 영어부분은 웹에서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은 짐의 대사를 발견했다.

<뚜리리의 닥치는대로 리뷰> 블로그에서 발췌함

(블로그 글 링크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zkvpdptjzjvlgkswks&logNo=222213489502&categoryNo=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

위에서와 같이 영어가 보통의 영어와는 매우 달랐다. 읽어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they = dey, gonna = gwyne 로 사용, slang 인 듯)
이런 흑인들의 언어를 드러내기 위해 번역가는 전라도 사투리 같은 형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이해는 되지만 전라도 분들이 싫어하실 수도 있겠다 싶다.




(좌)톰소여갱단    (중)짐   (우)왓츤아줌마


이 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작가들이 미국 문학을 위해 공부하는 바이블로 추대되는 책이다. 1800년대 미국 남부의 실상을 고스란히 담아놓았기 때문에 흑인 노예제도의 문제점을 마크 트웨인의 맛깔난 필체로 잘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인종차별 문제는 여러 곳에서 갈등 상황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는 이 책이 계속 불편하게 다가왔다.

특히 헉(허클 베리)과 짐(흑인 노예)이 함께 모험을 겪게 되는데, 짐이 주인집을 탈출한 것을 알게 된 헉이 당시 법률상 마을에 신고해야 하는지 갈등하는 부분과 결국 그의 탈출을 돕지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아이의 생각에도 흑인 = 노예라는 당시의 가치관이 그대로 엿보였다.

인종차별 관련된 책은 이 책 이외에도 <뿌리>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느껴봤고, 그 외 여러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다. 익숙하지만 특히 이 책에서 더욱 불편했던 이유는 열 살짜리 꼬마 아이의 시각에서 드러난 현실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한 가지는 아동학대 문제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 TV에서 방영하는 만화로 보았던 기억만 갖고 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가며 짐(흑인)과 헉(허클베리)이 좌충우돌 모험을 겪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큰 줄거리로 보면 내 기억이 맞다. 하지만 실제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 된 것은 헉과 짐이 떠난 것은 모험이 아니라 "탈출"이었다.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하는 <톰 소여의 모험>에서 헉은 큰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더글러스 부인 집에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노처녀 왓츤 아줌마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제한당하고 잔소리와 눈칫밥을 먹고 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헉이 큰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헉의 술주정뱅이 친아빠는 헉을 찾아와 가두고는 돈을 내놓으라고 학대한다. 그래서 아빠의 학대를 피하기 위한 탈출로부터 이 모험이 시작된다.

아동 학대(Corporal Punishment/체벌, Child Abuse) 문제는 일찍이 미국에서 굉장히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여러 종류의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의 무대인 1800년대에는 그렇지 못했겠지만.
2002년 내가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학원에서 숙제로 내 준 첫 에세이도 바로 아동학대 문제였다. 또, 토플시험의 에세이나 리딩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매우 자주 봤다. 어린 시절 미국 현지에서 촬영된 드라마(제목이 1.5 였던 것으로 기억함. 이민자 부모와 자녀들의 삶, 1.5세대 이야기)에서도 한국인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데 옆집에서 경찰에 신고해서 부모가 잡혀가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사랑의 매”가 없어진 지 오래지 않은가?
아무튼 이 소설의 전반에 흐르는 아동학대로 인한 탈출은 어른들 특히 아이를 둔 부모는 꼭 한번 생각해보고 되짚어볼 만한 문제다.

그런데...

모험이라는 단어로 미화하고 있지만, 사실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년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다. 그걸 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헉은 매번 재치 있는 행동과 능청스러운 거짓말로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제와 질서는 어린아이가 홀로(물론 흑인 짐과 함께) 나아가기에는 너무 버겁고 어러운 것이 현실임을 보여준다. 미국의 탯줄이라고 불리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연약한 어린아이와 흑인 노예가 고단한 여행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가는 이야기, 어쩌면 마크 트웨인은 사회적 약자를 소설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현대(1800년대) 미국이라는 곳이 그들이 헤쳐가기에는 매우 버겁고 힘들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사실...
하는 짓이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는 (잔망스러운) 헉과 말똥말똥 순진한 눈으로 아이의 거짓말과 이야기에 휘둘리는 마냥 순진하기만 한 짐을 보고 있으면 캐미가 잘 맞다는 느낌은 없다. 그래도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뭘까?

...
이 둘이 모험 중 만나게 되는 어른들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세속적이고 위선적이다. 특히, 공작과 왕족으로 등장하는 사기꾼들과 함께 마을을 돌며 사기를 쳐 돈을 긁어모으는 장면과 거짓말이 들통나 도망치는 장면, 이런 반복적인 상황 속에서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기꾼들을 보고 있으니 수법은 달라졌지만 현대의 사기꾼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시골을 돌며 노인들에게 “만병통치약”이라며 설탕물을 팔던 사기꾼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가? 보이스 피싱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드디어 톰 소여가 등장한다. 헉과 달리 톰 소여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아이다. 헉의 눈에 톰 소여는 학교와 가정교사 그리고 책을 통해 아는 것이 많은 항상 또래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다.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의 정확한 면모를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느낀 톰 소여는 매사에 형식이 중요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관념)대로 진행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모범생의 표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독선적인 모습과 우쭐대는 모습이 엿보인다. 물론 이런 형식과 절차 덕분에 사건이 더 커지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지만 끝은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게 과연 아이들이 해낼 수 있는 모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유유히 떠내려가며 배고프면 낚시를 하고 근처의 마을에 들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하지만 실상은 탈출이기에 밤에 뗏목을 타고 이동하고, 기척을 숨기고, 이름을 숨겨 자신을 감춘 채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모험. 나라면 부모의 학대 속에서 탈출해 이런 위험천만한 모험을 할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헉과 짐 이 둘은 현실을 벽을 깨야한다는 아주 절박한 마음속 외침에 몸이 반응한 것이다. 그것을 마크 트웨인은 미려하고 즐겁고 풍자적으로 세상에 알린 것이고.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었다.

잘 읽었다.


#허클베리핀의모험 #마크트웨인 #고전읽기 #문학소년 #작가김경태 #닥치고독서클럽



 < 좋은 문장 발췌 >


바로 그때 언뜻 무슨 생각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과부댁이나 목사 또는 누군가가 이 빵이 나를 찾아내도록 기도를 올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처럼 빵이 물에 떠내려와 제 구실을 다 해낸 셈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 기도에는 무슨 효능이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즉 과부댁이나 목사 같은 사람이 기도를 올리면 그 기도는 효능을 발휘합니다만 내가 기도를 드리면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진실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기도가 맥을 못 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p.87)


짐, 난 저 난파선을 샅샅이 뒤져보지 않고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단 말야. 톰 소여 같으면 이걸 그냥 내버려둘 것 같애? 천만의 말씀, 어림도 없지. 톰은 이걸 모험이라고  부를 거야 --바로 그렇게 부를 거야. 비록 목숨을 거는 일이 있더라도 그 배에 꼭 올라가고 말 걸. 그리고 멋지게 해치울 게 아니겠어? -- 또 뻐기기는 얼마나 뻐길 거구? 마치 천국을 발견해 낸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처럼 굴 거다. 톰 소여가 지금 여기 있었더라면 오죽 좋을까.(p.147)


비록 사람을 죽인 범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곤경에 빠지게 되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나라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텐데, 내가 그런 꼴이 되면 내 기분이 어떨까 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지요.(p.157)


옳은 일을 하는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본댔자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젠 이 일로 마음을 쓰는 일을 아예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그때 그때에 제일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p.222)


원한이란 이런 거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싸우고 그 사람을 죽여버린단 말이야. 그러면 그 피살된 사람의 형제가 처음 사람을 죽일 게 아냐. 그러자 그 양쪽 형제들이 서로 맞붙어서 서로를 죽인단 말이야. 이번엔 사촌들이 끼어들 게 아니겠어 -- 마침내 모두가 다 죽게 되면 결국엔 원한은 없어지고 마는 법이야. 하지만 빨리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이 걸려. ... 그렇지만 그들도 무엇 때문에 첫 싸움이 시작되었는지는 몰라. (p.253)


그러나 나는 한마디 입도 뻥끗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요. 혼자만 알고 내색을 않는 것,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귀찮은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놈들이 자기들이 왕이니 공작이니 하고 불러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 한 나는 반대하지 않았지요. 짐에게 얘기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빠한테서 무엇인가 배운 바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거라는 겁니다. (P.284)


여러분, 잠깐 기다리시오! 한 마디 말하 게 있소. 그말에 사람들은 주춤 걸음을 멈추고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속아넘어갔소. 하지만 우리들은 이 마을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죽을 때까지 늘 이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단 말이외다. 그것은 아니될 일이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 나가서 연극을 칭찬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도 우리처럼 속아넘어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 모두 피차 똑같은 처지에 놓이는 게 아니겠소. 어디 내 말이 틀렸소? 그 말이 옳아! 판사님 말이 옳다니까! (p.334)


왜 그럴까요? 하나님에게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내 자신에게 감추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지요. 왜 말이 안 나오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속과 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포기하는 척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가장 큰 죄에 매달려 있는 거지요. 입으로는 옳은 일, 깨끗한 일을 하겠다고, 그 검둥이 주인에게 검둥이가 있는 곳을 편지로 알려주겠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계시지요. (p.450)


옳은 일을 하든 그른 일을 하든 매한가지였습니다. 인간의 양심이란 사물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을 탓할 뿐이었습니다. 만일 인간의 양심만큼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똥개가 있다면, 난 그놈을 잡아 독살해 버리고 말 겁니다. 양심이란 인간의 내장 모두가 차지하는 것보다도 더 큰 장소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겁니다. 톰 소여도 나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p.482)


그것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의물르 다하는 것뿐이지, 누군가가 우리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있는지 보고 있지 않은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너한테는 전혀 원칙이라는 게 없니? (p.548)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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