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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an 27. 2021

<죄와 벌> 한 꺼풀 더 벗겨보기

|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두 번째 리뷰 |


얼마 전 <죄와 벌>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발견한 3가지에 관한 글을 썼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maniac292929/284


이번에는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을 조금 공부해보면서 한번 더 <죄와 벌>을 정리해보았다.



 
"범죄를 저지르고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올해 2021년은 이 책의 저자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탄생 200주년이라고 한다.

이 책은 다른 러시아 고전과 마찬가지로 처음 읽기 시작할 때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집중이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가면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라도 감히 말하고 싶다.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책의 시간/공간적 배경이 되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의 상황을 조금 얕게라도 이해하고 나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무척 이해되기 때문이다.  

표트르 대제


< 배경 >
1721년 대북방 전쟁(Great Northern War, 1700~1721년, 발트해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 스웨덴과의 전쟁)의 승리로 러시아는 자신들의 군주에게 황제라 칭하며 제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때부터 러시아는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대국으로 세력을 팽창해 나가게 된다.
세계사 책에서 많이 들어봤을 표트르 대제(1672년 6월 ~ 1725년 2월, 53세)는 토지와 세금을 정비하면서 농업국에서 공업화로의 변화의 기틀을 닦는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가 일궈놓은 변화를 바탕으로 문화와 군사/과학 등 모든 면에서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의 시기는 혼란과 무질서가 공존한다.
1700년대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근대화 정책은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2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60년대는 러시아 근대화가 본격적인 탄력을 받은 시기이다. 표트르 대제의 명령으로 건설된 인공도시 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를 벗어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수도로 계획된 도시였기에 급속도로 팽창한다.
농노제의 해방(1861년)으로 지배계급의 착취에서 벗어나게 된 무산자계급(프롤레타리아)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줄줄이 이주하게 된다. 더불어 서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1760~1820년)이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혼란의 시기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도시 빈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 줄거리 및 의견 >
이런 시기를 정확히 그리고 있는 이 소설 <죄와 벌>을 가르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가난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등장부터 가난함이 그대로 표현된다. 하숙비를 내지 못해 집주인을 피해 다니고, 그의 대학 수업료를 위해 고향에 있는 동생 두냐는 결국 비열한 인간의 표본인 부잣집 중년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결정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를 계획하게 되고, 결국 매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는 전당포 노파(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하겠다는 정의구현의 결단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사실 이해 못함), 그 노파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리자베타(전당포 노파의 동생)까지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면서 그는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실 문방구에서 지우개 하나만 훔쳐도 다시는 그 문방구를 찾지 못하고, 피해서 돌아가는 게 죄지은 사람의 마음인데 살인이니 오죽할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최초 살인을 계획할 때 라스콜리니코프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을 한다. (물론 법대 시절 자신의 논문에 게재했던 주장)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천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책에서는 나폴레옹과 마호메트 예를 드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이 저지른 "518 광주 민주화 운동"같은 경우가 그가 말했던 사례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내 생각...)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살인 목적이 비참한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서가 아닌 정의의 사도로서 사회의 악을 응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전당포 노파의 금품을 훔친다. 물론 그것을 자신의 영위를 위해 사용하지는 않지만. (정의라면 금품을 훔치지는 않아야겠지)

범죄 후 그의 정신은 죄의식보다는 공포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흔히들 <죄와 벌>은 죄를 저지른 주인공의 의식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 후 생각과 행동에서 죄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는 저지른 살인에 따른 공포감을 느끼고 그 공포감이 점점 자신을 타인들과 격리시킨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그의 친구가(라주미힌) 그를 찾아와 정신착란 같은 그의 상태를 돕고자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도움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가두고 숨긴다.
죄를 저지른 후 공포감이 스스로를 세상의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시종일관 주인공의 고독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범죄 후 라스콜리니코프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어렵게 고향에서 보내준 돈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줘버리는 행동)과 또, 딸(소냐)의 몸을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가고 있는 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의 부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은 당장 먹을 음식을 살 돈도 없으면서 남편의 성대한 추모식을 위해 얻은 돈을 몽땅 써버리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과연 정말 가난에 찌든 사람이 맞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또 한편으로 사람마다 삶의 기준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의 끝은 이 소설의 히로인 소냐와 주인공의 깊은 대화와 소냐의 희생을 통해 로쟈(주인공)는 자수를 하고 형을 살게 된다. 시베리아의 수용로가 가게 되는 주인공 로쟈와 그를 따라나서는 소냐의 희생적인 행동을 보면서 "구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나는 마지막 부분이 너무 극적으로 희화화되어있어 이해도가 많이 떨어졌다. 이건 마치 김진명 작가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극적으로 치닫다가 핵미사일을 일본 열도에 쏘고 나서 바다에 떨어뜨리는 거룩한 용서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해설을 찾아보니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신 앞에서 자신의 위선과 자만이 초라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쓰여있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조금 김이 빠지긴 했지만, 마지막이 좋다는 분도 많기에 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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