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Apr 26. 2021

꿈이 달랐다. 꿈이 아팠다.

| 현실과 꿈 그 사이 어딘가...


보통 그렇지 않나? 꿈을 꾸다보면 ‘아! 이거 꿈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말이다. 나만 그런가?



그런데, 지난밤 꿈은  달랐다.


대학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였다. 20학점을 신청했었는데, 전공이었던 두 과목에서 F가 나왔다.



보통 이 정도 상황이면  머릿속에서는 ‘! 이거 꿈이구나!’라는 생각이 작동한다. 그리고 서서히 잠을 깨우는 방법을 시도한다. 그런데, 지난밤의 꿈에서는 당황스럽게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상황을 느꼈다. 두 과목이 F 나온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 출석 때문이었다. 기억을 되짚어봤을 ,  개강일에 수업에 참석하고는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없었다. 물론 과제도 시험도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그러니 F 당연한 것이겠지. (과연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런데,  놀라운 건 나의 실제 대학생활이 이랬다는 거다.)


F 학점을 받고는 졸업 가능 학점을 세보기 시작했다. 졸업학점이 모자라면 나는 1학기를  다녀야 했다. 취업을 기대하고 계신 부모님, 같이 졸업할 것을 굳게 믿고 있던 친구들, 그런데 현실은 6학점이 모자랐다. 오금이 저렸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학부 행정실에 전화해서 졸업생도 겨울 계절학기 수강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다행히 졸업식보다 일찍 계절학기가 끝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 다행이다.’



나는 부모님께 말은 못 하고, 계절학기 6학점 수강을 위한 수업료를 구해야 했다. 1학점당 20만 원, 총 120만 원.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지? 여윳돈도 없는데, 알바를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졸업이라서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속여 부모님께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놓치고 있던 생각에 닿았다.


 

설마! 전공 학점을 다 못 채운 거 아니겠지?’, ‘근데 4학년 2학기에 내가 왜 전공수업을 들었지?’, ‘아! 기억나지 않는데, 전공 이수학점이 모자라서 들은 거 아니었나?’


점점 심장박동이 커졌다. 손에 땀이 흥건했고 등에도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리나케 컴퓨터에 접속해서 취득학점과 이수학점을 살폈다. 역시나 전공 6학점이 모자랐다. 큰일이었다. 계절학기에는 전공수업이 없기 때문이었다. 꼼짝없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다.


‘어떡하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교수님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닿았다.  F학점을 D로 바꿀 수만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되는 문제였다. 아직 성적 정정기간이었다. 두 분의 교수님을 찾아가서 빌고 빌어 F 대신 D를 달라고 애원해보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한번에 해결 가능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을 단 한번도 찾아뵌 적이 없는데 내 상황을 고려해줄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검음을 옮겨 첫 번째 교수님 방 앞에서 노크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누구지? 이 중요한 상황에?’






아침을 깨우는 알람이었다.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현실인가? 꿈인가? 결국 꿈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이 났다. 그런데,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매우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대학생이 되고서는 급속도로 불성실해졌다. 꿈에서와 같이 수업을 참석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였고, 컴퓨터 오락에 빠져 시험을 빼먹기 일쑤였다. 비단 군입대 전에는 학교를 간 날이 전체 출석일수의 1/5 정도 될지 모르겠다. 기숙사 룸메이트는 내 얼굴을 처음 이틀 정도 보고는 못 봤다. 한번도 그 방에서 잠을 잔 적이 없으니까. 가끔 옷을 가지러 들렀던 것 빼고는 그 방에서 머문 적이 없었다.


팽팽했던 고무줄이 툭하고 끊어지듯 대학생이 되고서는 내 머릿속에서 나는 더 이상 학생이기를 거부했다. 아니 학생이었지만 공부와는 멀어지고 싶었다가 더 맞는 표현이다. 방종 같은 자유를 만끽하며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자취방에서 합숙하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면서 살았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걷고 싶은 길을 걷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런 자유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애타가 자유를 갈구했다.


부모님과 약속했던 2년의 시간 동안 철저하게 자유로웠고 이후 나는 머리를 자르고 입대했다. 2년 2개월의 군생활을 끝내고 10개월을 쉬면서 친구들과 다시 예전의 자유하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복학을 하면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쉰 탓인지? 원래 공부가 내게 맞지 않아서였는지 성적은 나오지 않고 나는 점점 전공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복학 후 첫 성적표를 받았을 때 즈음 나는 악몽을 꿨다. 아마 지난밤 꾸었던 꿈과 비슷한 내용의 꿈이었을 거다. 졸업을 해야 하는데, 학점이 모자라고, 계절학기로 열심히 메꿔봤지만 학점은 노답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꿈과 현실이 동일했다. 온갖 교양과목을 수강하고 전공은 최소한으로 수강해서 어떻게든 2년간 학점을 쥐어짜 보려고 아등바등하던 시절이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이 시점에 왜 나는 다시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일까? 현재 나의 불안한 심정을 꿈을 통해 드러낸 것일까? 꿈은 반대라던데, 뭔가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나? 샤워를 하면서 계속 지난밤 꿈 생각에 집착했다. 꿈이 참 아팠다.



다시 한번 비슷한 꿈을 꾸게 된다면 나는 꿈속의 나에게 꼭 질문해볼 것이다.


“왜 이런 상황에 오게 되었냐고? 이 상황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냐고?”


현실의  말고, 꿈속을 살고 있는  다른 자아에게 질문할 거다. !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900일, 구독자 2,000명을 넘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