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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5. 2020

여행은 언제나 옳다

여행이 옳을 수밖에 없는 이유


돌아올 것을 알기에 "떠남"이 행복하고,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어.

여행은...???



[Why] 왜 떠나는가? (여행의 이유)


여행. 참 가슴뛰는 단어지만 또한 피곤한 단어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새로움을 기대하는 활동이지만 또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익숙함이 편안함을 주지만, 어색함에서 휴식을 찾으려는 다소 모순된 활동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옳다"


이 문장이 쓰고 싶어서 "여행"이라는 카테고리를 정했다. 과정이 피곤하고, 두려움이 엄습하고, 긴장과 지루함에 푸념을  늘어놓는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나 여행은 옳았다.

왜 옳았을까? 앞으로도 계속 옳을까?


장소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한가지 뿐이다.

그건 바로 "설렘"이다.


날짜를 정하고, 준비물을 챙기고, 계획을 세우다보면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뛰는건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낀다는 건 흥분되는일이다. 이게 바로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다.  




[Where] 어디로 떠날 것인가? (여행의 목적지는)


목적지를 정한다는 건, 목표가 있다는 뜻이다. 목표는 가야할 이유를 만들며, 그 이유는 당위성의 근거가 된다. 지금까지 큰 고민없이 여행의 목적지를 정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렇게 꼬리를 무는 합리화 속에서 여행은 특별해지고 의미를 가진다.


난 여행을 계획하는 시점에 (아니 계획 이전이라고 해야할까?) 꼭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두었다. 가슴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연 경관이나 건출물, 꼭 한번은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나 휴양지, 죽기전에 체험해 보고 싶었던 도전들. 이런것들이 존재하는 그곳으로 10여 군데를 미리 정해뒀다. 물론 순서대로 가지않고,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한다. 새로운 곳이 자꾸 업데이트 된다. 하지만 갈 곳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멈추지 말고 계속 걷게 만드는 힘을 갖게한다.


한라산 백록담,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 성산 일출봉 꼭대기, 브라질 이과수 폭포, 리우데자네이루의 커다란 예수상을 카메라에 담기, 쿠바에서 시가 한대 피우며 남미음악에 취해보기,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육상경기 관람, 윔블던 경기 관람, 깐느 영화제 기간에 깐느에서 보내기, 요세미티에서 가족 캠핑 ...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것은 왜 가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기름을 끼얹는다.  



[When] 언제 떠나고 싶은가? (여행하는 시기의 중요성)


사실 항상 떠나고 싶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소고기도 가끔 먹어야 맛있듯, 일상의 피로와 권태가 나를 찾아와 리셋을 갈망하는 시점에 떠나고 싶다. 그래야 설렘이 한껏 고조되고, 준비가 즐겁기만하며, 계획만으로도 난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예전엔 화창하고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좋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도착한 곳의 날씨가 좋으면 좋고, 여행하기 힘든 날씨면 또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지난번 그라나다 여행때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온종일 집에 머물렀는데, 네 식구가 외국에서 벽난로 켜놓고 온종일 하릴없이 빈둥거렸다. 그러다가 뭐 할거 없을까 찾은것이 무작정 집 주변을 떠돌아 보는 것이었다. 좁은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 신기한 가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집 근처의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작은 수퍼마켓,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커피숍과 문구점 등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뜻밖의 물건들도 몇 개 구매했는데 여행을 마친 후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보다 그날 잠시 나가서 본 동네의 상점과 사람들 모습이 훨씬 좋았다고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집 <먼 북소리>에서 그가 그리스의 스펫체스 섬에서 늦가을과 겨울에 머물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관광지로 한참을 북적이는 곳이지만, 그가 머물기로 한 시점에는 관광객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유령같은 스펫체스 섬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항상 그곳에 살던 현지인들이 있었다. “시기를 잘못 맞췄나?”라는 생각은 잠시 머릿속에 머물다 사라졌고, 다소 을씨년스러운 늦가을과 겨울의 에게해에서 그는 <상실의 시대> <댄스댄스댄스>의 초고를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작품들의 허무와 공허함이 그리스의 겨울 날씨와 분위기에서 나온게 아닌가 상상해 보았다.


그렇다. 꼭 좋은 때 갈 필요는 없다. 내가 가는 그 때가 가장 좋은 때다. 봐야할 것, 느껴야 할 것을 숙제처럼 해내는 것도 물론 여행의 묘미다. (내가 가고싶은 곳을 나열한 것처럼) 하지만 계획속에서 중간중간 야기되는 돌발변수가 진짜 여행의 맛이다.


그래서 여행은 옳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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