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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24. 2020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을 읽으며

임경선 작가를 통해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저 그래야 될 것 같았고, 또 너무나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프롤로그


임경선 작가는 글을 참 잘 쓰는 분이다. 생각이 깊고, 표현하기 애매한 감정의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한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작년에 우연히 내 눈에 걸린 <태도에 관하여>란 책 때문이다. 생각 없이 들었던 책에서 단 몇 줄 읽었을 뿐인데 그녀의 글에 빨려 들었다.

당시 고민하고 있던 업무(일)에 대한 본질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 그녀의 글 덕분에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잔뜩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있던 내게 “힘 좀 빼자”라며 누나처럼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때부터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역시 서점 책장을 거닐다 우연히 임경선이라는 이름을 발견했기에 손에 쥐게 된 책이다. 깜짝 놀란 것은 그녀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20대 내 삶은 하루키와 이외수라는 두 명의 작가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하루키에 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머리말에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저 그래야 될 것 같았고, 또 너무나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였다. 


너무 솔직하고도 담백한 말 아닐까? 다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이 그냥 마음이 그러길 원했다는 것이고, 그 결을 따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다.


아래쪽에 작년에 내가 다시 읽었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 링크해두었다.


그때의 글에서도 기록해두었지만, 20대 내 삶에 갑자기 훅 들어온 하루키 때문에 난 “왜? 청춘을 허무하다고 얘기하는가?”라는 화두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었다. 화려함만으로도 모자란 열혈의 청춘에게 하루키는 허무와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시의 난 도무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를 이해해보고자 그가 쓴 다른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가 그리고 있는 세상에 대한, 또 인간에 대한 관점과 깊이 있는 본질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20대에 읽었던 그 느낌을 다시 가져보고자 읽었던 하루키의 글에서 난 예전의 그 느낌을 건져올릴 수 없었다. 40대에 읽은 하루키의 글에서는 20대에 이해 불가였던 상실과 허무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적잖게 당황하고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하루키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할까?


나이가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다소 꼰대가 되어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을 쓴다는 것이 자기만족감에  도취된 쓸데없는 노력은 아님을 깨치는 순간이었다. 기뻤다.




이제 막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임경선의 눈과 생각을 통해 내가 조각해 둔 하루키와 다른 새로운 하루키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떨린다. 빨리 읽고 싶지만 천천히 느끼면서 읽어야겠다.


설렌다.




<20년 후 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http://motivatorslab.com/221574082397


<태도에 관하여 - 임경선>

http://motivatorslab.com/22156370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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