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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y 26. 2021

왜 항상 엄마 친구 아들은 고학력에 직업이 X사일까?

| 아들을 바라보며 아빠가 쓴 엄친아 이야기



영원한 나의 , 엄마 친구 아들!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살았다.


엄마 친구 아들은 서울대 갔더라.”

엄마 친구 아들은 사시 패스했더라.”

엄마 친구 아들은 의사 되어서 병원 차렸더라.”


대체  우리 엄마 친구의 아들들은 고학력 / 고스펙에 소위 상류층이라고 불리는 직업만 갖고 있는 것인가? 어딜 둘러봐도  주변의 친구나 동료들은 모두 나랑 비슷하고 고만고만한데 말이다.


대체 그들은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가? 대체 그들은 어떤 것을 먹고 자랐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기에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엄마조차 입에 침을 튀겨가며 극찬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행복이 넘쳐나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보이는 삶을 사는 걸까?





“엄마 친구 아들”로 대표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라는 욕구는 아주 오래전, 홍길동전이나 심청전, 춘향전에도 엿보인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의 표현인 것이다.


예를 들어, 홍길동전에서 길동은 양반의 아들이지만 엄마가 천출이라 관직에 나갈 수 없다. 그의 아버지 역시 명석한 길동을 알아보지만 서자라는 사회적 제약 때문에 그가 주변 양반집 적자처럼 세상 밖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탄식하며 그를 놓는다. 책에 자세히 등장하지는 않지만 길동이 살고 있는 동네 양반집 안주인들도 모두 길동을 무시했고, 근처의 양반댁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것을 시샘했을 것이다. 심청전과 춘향전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찬가지다. (너무 억측인가?)




아무튼, 다시 현대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돌아와 보면 엄친아의 시작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가난과 기아 속에서 사람이 곧 노동력이자 재산이고,  밥그릇은 타고난다는 말을 믿으며 자녀를 많이 낳았다.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노동력이  부의 원천이었다. , 여럿 자식들   명이 잘되면 함께    있다는 작은 믿음이 있었다.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효가 본성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그랬던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부터 산아 제한을 시작하면서 예전 대여섯은 기본으로 낳던 자식수를 ~셋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이런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과 더불어 농업에서 중공업으로 대한민국의 산업계가 재편되었고, 지금 60~80대가 20~40대였던 70~80년대가 되면서 아시아의 용으로 불리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고 자신들도 놀랄정도로 몰라보게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



끼니를 걱정하던 때에서 의식주가 안정이 되자 그들 자식에게는 쓰렸던 가난의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나는  배워서 허드렛일로 돈을 벌지만 자식들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그런 미래를 바랐다.  결과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학업에 대한 열기가 과했고,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듯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쌈짓돈을 싸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변 동료의 자녀나 혹은  자녀가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나 “합격플래카드가 붙고, 동네잔치를 벌여 축하하는 것이 다반사였. 그렇게 개천에서 용이  마리씩 나오기 시작했다.




옆집 아들이 서울대를 가고, 건너집 딸이 이대를 가고, 옆동네 이장 아들이 고시 패스를 하면서, 또래의 자녀를  부모들은 점점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넘치는 부모의 기대와 그 기대 속에서  냄새를 맡은 사업가들 콜라보 기숙학원, 개인과외가 자리를 잡았고, 그 틀 안에서 학교가 아닌 학원이라는 거대 공룡이 탄생했다.현재의 대치동, 목동 같은 교육 시장은 부모와 교육사업이 만든 성이다.


 결과 시험 문제를  골라내는 족집게 강사가 수십억의 돈을 벌어들이고, 그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너서클이 만들어졌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괜히 온게 아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마냥 미안해 한다. 남들은 다하는데  아이가 못하면 그건 부모의 능력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40~50,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이제 자녀들이 수험생.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방식으로 공부 대학을 갔고 취업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배우고 익힌  과거의 방식이라  자식들에게도  방법이 통할 것이라고 믿고 우긴다. 내 부모와 똑같이 나라는 부모의 기대와 기대를 부담스러워하는 아들과    사이에는 점점 벽이 생긴다.




요즘 나는 입을 다문다. 입을 열면 자꾸 비교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는 열심히 공부한다던데, 누구는 혼자서도 척척 알아서 한다던데, 아빠는  나이  ~~ 했는데…”


결국 부모의 생각과 부모의 입이 자식들을 점점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아닐까?   




자식을 다 길러 결혼시키고 독립시킨 부모님이 하는 말이 있다.


너도 자식 낳아보면  거다.”라는 말이다. 그 말이 특히 요즘 많이 와닿는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그렇게 손자 손녀를 좋아하는 이유도   같다.  자식이면 집착을 하게 되지만, 부모가 아니기에 그래도  발은 떨어져서 녀석 디 그 모습을 그대로 봐줄  있기 때문이다. 집착을 버리면 아이들의 어떠한 행동도  이해할  있다. 내가 예전에 그랬기 때문이다.



글이 길었다.


부모의 기대감의 분출로 생성된 고유명사 “엄마 친구 아들 영원히 고학력/ 고스펙에 누구나 우러러보는 직업과 돈을 가진 지성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진 자의 대물림 같은 전유물이 아닌 비교의 비교의 비교로 태어나는 지속적인 욕망의 허상 말이다. 부모가 기대와 집착을 탁하고 놓아버리지 않는  말이다.


씁쓸하다.


- 작가 김경태 -


#엄친아 #엄마친구아들 #개천용 #부러우면지는거다

#기대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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