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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y 31. 2021

눈물이 줄어드는 건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눈물, 그 정직한 표현


나는 울보였다.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먼저 눈물이 차오르는 아이였다. 시기심이나 질투심 따위가 아니었다. 엄마의 말 한마디, 친구의 행동 하나에도 쉽게 맘이 상해 눈물을 보이는 울보였다.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조금만 감정이 틀어지면 어느새 내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눈빛은 분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눈물은 이미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참아지지 않았다.



여느 아이처럼 떼쓰고 졸라댔던 기억이 많다.


내 주 스킬은 “굶기”였다. 그 시절 아빠 엄마는 내 욕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나의 배를 혹사시키는 것이었다. 한 끼 굶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만 두 끼, 세끼가 넘어가면 엄마는 점점 화를 냈다. 밥상머리에서 큰 소리가 오갔다. 사소한 욕구였지만 어느 순간 일이 켜졌다. 나는 감당하지 못함에 분했고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차려놓은 국 속으로 눈물이 뚝뚝 흘러들어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장면마다 마음 약한 아빠는 항상 내 손을 들어줬다. 엄마는 아빠에게 화를 냈다. “애 버릇 나빠지게 뭐 하는 거예요!”라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떼쓰며 울었던 때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날 이후 부모님께 떼쓰지 않았다. 다만, 친구들과 감정 다툼으로 몇 번 훌쩍였던 기억은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내 눈물은 급속도로 말라갔다. 이제는 언제 울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왜 눈물이 말랐을까?


처음에는 감정의 동요가 적어졌다고 생각했다. 경험에서 오는 학습효과로 예전에는 무척 분했던 것들이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또, 슬프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눈물을 보이는 건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복잡다단한 생각과 감정, 경험, 학습의 결과로 내 눈물은 차츰 사막화되어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울음이 터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식 날. 나는 학교에 별 미련이 없어서 졸업식을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축하해야 하는 날이라며 명륜동으로 오셨다. 시간 맞춰 누나도 함께했다.  과 친구들과 후배들을 만나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었고, 부모님의 꽃다발을 받았다. 그렇게 사진 몇 장과 인사로 졸업식을 끝냈다. 우리 가족은 근처 식당에서 한정식을 먹었다. 인사동으로 건너가 차를 마시고 아빠 엄마를 KTX에 태워 부산으로 배웅했다. 누나는 누나 집으로, 나는 직장이 있던 천안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 일 없는 듯 돌아온 오피스텔에서 책상에 앉아 휴대폰으로 찍어놓은 졸업식 사진을 뒤적였다.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떠나는 아빠와 엄마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흐릿한 사진이었는데 엄마 눈에서 아쉬움과 대견함을 봤던 것 같다. 그날 나는 혼자 책상에 앉아 펑펑 울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또, 불쑥 눈물이 찾아든 날이 있었다.


2009년 영화 <국가대표>를 극장에서 보다가 눈물이 터졌다. 감동의 눈물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눈물이었다. 극 중 이한위 씨가 연기했던 아버지의 연기에 그만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내 아빠, 아니 내 아버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당신의 말은 짧다. 통화를 해도 1분을 끌기 어렵다. 하시고 싶은 말만 쏟고는 이내 전화는 끊긴다. 행동은 차가워 보이지만 나는 내 아버지의 마음이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하다는 걸 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어린 시절 내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준 분이 바로 아버지였다. 당신의 말은 사납고 매정해 보이고 권위적이지만 그 속는 무엇보다 따뜻한 걸 잘 안다. 그랬던 아버지의 모습을 불현듯 영화 속 이한위 씨가 연기한 마사장에서 보았다. 갑자기 터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혼자 본 영화였다.



다가올 내 삶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더 울게 될까 생각해본다.

내가 가장 많이 울게 될 그날은 아마도 부모님의 죽음, 가족의 죽음일 거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것을 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고 까뮈는 말하지 않았던가!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라고 누구의 죽음이 먼저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님은 먼저 보내드릴 수 있을 거라 다짐한다. 삶은 “윤회”라고 믿고 싶기에 부모님의 죽음, 다시 말해 현세의 영원한 이별도 슬프지 않겠다 여러 차례 다짐했다. 그래도 분명 슬플 것이고 많이 울겠지. 그날 마주할 눈물에 미련이 없어야 할 텐데 벌써 걱정이다.



글을 쓰는 동안 눈가가 촉촉해지고 코 끝이 자꾸만 찡해진다.

애써 본다.


눈물은 참 정직하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눈물 #정직 #남자의눈물 #향수 #부모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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