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Angry Men : 12명의 노한 사람들>을 보고
차기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정치 이슈에 뜨겁다. 진실이 무엇인지보다 당리당략과 편 가르기에 여념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주의 국가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결이고 다수결은 국민 개개인의 참정권으로 보장된다. 간접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다 보니 국민의 의견을 대신 전달하는 300명의 국회의원이 존재한다. 국민들의 직업(전문분야)은 셀 수 없이 다양한데, 대의제를 채택한 국회는 이상하게도 법조인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법조인을 대표하는 곳이 입법부라고 말하면 성급한 일반화이자 과장일까?
어릴 때 아빠가 9시 뉴스를 보며 흥분하고 화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이 생길수록 사람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고발 사주" 관련된 뉴스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판단을 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슈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에 대한 입(말)을 봐서는 안되고 그의 행동을 봐야 한다.
세 치 혀는 가볍다. 하지만 혀가 머리를 거쳐 몸으로 나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의 얼굴이나 걸음걸이, 인사하는 것만 봐도 상대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튼 이 또한 어떤 결론을 내며 지나가겠지!
최근 일련의 정치적 이슈를 따라가면서 "개인의 편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묵혀두었던 영화 <12명의 노한 사람들>을 봤다. 1957년작으로 미국의 배심원제에 관한 흑백영화다. 두 시간 내내 배심원이 모여있는 방하나가 영화의 무대 전부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말에 매우 집중해서 영화에 몰입했다. 2년 전, 우리나라 영화 중 <배심원들>이 있었다. 그 영화도 괜찮게 보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그 영화도 이것을 오마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검색을 해보니 원작을 각색한 연극도 많이 올라가고 있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하다. 18세 청년이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청년은 빈민가에서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 그는 전과기록도 있다. 법정에서 배심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판사의 말과 함께 12명의 배심원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다. 배심원들은 회의실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너무 쉬운 판결이라고 빨리 끝내자며 화기애애하다. 하필 그날은 1년 중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되어있고 사람들의 셔츠와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12명의 일치된 결과가 있어야 한다. 볼 것도 없다며 바로 투표를 하자고 외치고 투표를 한다. 결과는 11:1 8번 배심원 1명이 Not Guilty를 외쳤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의심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1명의 배심원은 황당하지만 1명씩 그를 설득하자며 자신들이 유죄라고 판단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입견과 감정이 묻어난 말이 대부분이다. 빈민가, 증인들의 이야기, 전과 기록 등이 사건의 실체가 아닌 피고인을 이미 재단해버렸다. 여기서 8번 배심원(헨리 폰다)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들의 섣부른 결정이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없어야 유죄를 내릴 수 있다. 조금의 의심이라도 든다면 유죄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의심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유죄로 판단했던 사람들이 한 명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 10:2, 8:4, 6:6, 3:9, 1:11로 뒤집힌다. 결국 최후의 1명까지 Not Guilty(무죄)라는 말을 뱉고 영화는 끝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이럴 때 개인적 편견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나도 진실이 뭔지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홉 명은 피고가 무죄라고 하는데, 이것도 확률의 도박이고 우리가 틀릴 수도 있죠. 어쩌면 죄인을 풀어주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다면, 그게 우리 법체계의 우수한 점인데 배심원들은 확실하지 않으면 유죄 선고를 내릴 수가 없죠.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정의롭고 올바르게 쳐다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 판단 자체에도 이미 자신의 편견이 들어있다. 그래서 세대 간 계층 간 편견의 폭이 넓고 깊어지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성향이 달라지고 그 다름이 상대에 대한 조롱과 멸시를 부추긴다.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현재 우리나라 정치판의 모습도 내 편견이 잔뜩 배어있는 글이다.
그러면 이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게 바로 토론이다. 상대를 공격하는 토론이 아닌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 의견을 피력하여 상대를 수긍할 수 있게 만드는 토론 말이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의사소통만이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 기간에는 좋은 토론이 많았으면 좋겠다. 후보들과 여러 구도 속에서 좋은 담론이 오가며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과 시민의식을 꿈꿔본다.
-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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