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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Oct 19. 2021

삼성이 넷플릭스 같은 혁신 기업이 되지 못하는 이유

|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규칙 없음>을 읽고서

(※ 이 글은 제 개인적인 의견을 담은 글입니다.)




최근 넷플릭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경영학 교수인 에린 메이커의 인터뷰를 엮은 책 <규칙 없음>을 읽었다. 세계에서 TOP 레벨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삼성이라는 매머드 기업 직원의 눈으로 21세기 혁신기업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는 새로운 공룡 넷플릭스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짜릿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기간 동안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삼성의 문화와는 사뭇 다른 넷플릭스를 읽으면서 자꾸만 "왜?" “정말?”이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넷플릭스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아래부터는 리드)는 올해 나이 60세로 90년대로 대변되는 인터넷 파도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온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의 CEO였다. 일찍이 그는 <퓨어 소프트>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경영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Engineering과는 전혀 다른 분야를 통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고 그 과정 속에 회사를 키워 비싼 값에 매각하면서 넷플릭스의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초반부에 넷플릭스를 창업한 뒤 비디오 렌탈계의 공룡인 <블록버스터>에 매각을 시도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만약 그때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를 인수했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다.

결국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를 집어삼켰다


여하튼 리드는 <퓨어 소프트>에서 겪게 된 경영자에게 따르는 문제, 다시 말해 관리자와 구성원들 간의 의사결정에 관한 규칙에서 야기된 불합리를 더 이상 넷플릭스에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했고 결국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를 심플하고 유연하게 완성했다.


넷플릭스의 첫 사업 아이템이었던 비디오테이프를 우편으로 대여해주던 서비스(그 이전 비디오 렌탈은 모두 방문을 통해 이뤄졌다)에서 DVD를 배송하는 서비스로 전환하고, 인터넷의 고속화에 발맞춰 스트리밍 서비스로 또 한 번 탈바꿈하면서 현재 우리가 매일 들락거리는 넷플릭스라는 공룡의 뼈대를 만들어갔다.


그럼 리드가 만든 넷플릭스의 규칙을 살펴보자. 넷플릭스의 경영 규칙은 딱 3가지로 정리된다.


1. 인재의 밀도를 높인다.
2. 솔직한 문화를 만든다.
3. 통제를 제거한다.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아주 깊고 농밀한 기업 경영의 본질이 담겨있다. 대한민국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흔히 “외국계 기업”이라며 얘기하는 기업이 직원을 쉽게 자를 수 있는 구조 (비정규직) 속에서 나온 경영원칙이긴 하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든 경영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 다시 말해 실적이 중요하고 이익을 창출할 인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그저 그런 기업에서 혁신기업으로 점프업 할 때 리드는 보유한 인력의 1/3을 잘라내는 힘든 결정을 한다. 그리고 남겨진 직원에게는 철저하게 책임과 권한을 이양하고 믿고 맡겨 직원의 역량을 키워냈다. 이런 시간 속에서 보통의 기업이 진행하는 인사고과(평가) 체계에 의한 해고가 아닌, 스스로 모자라다 판단하여 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직하는 직원에게는 두둑한 퇴직금으로 향후 다시 직업을 찾게 될 그날까지 두려움 없이 버틸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물론 직원들에게는 업계 최고의 보상을 했다. 동료가 퇴직을 결심했을 때 관리자는 "이 친구가 퇴직해서 경쟁사로 가게 된다면 넷플릭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로 붙잡을지를 결정한다. 간단하지만 촌철살인 같은 질문이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동료를 잡아야 할 경우는 경쟁사보다 훨씬 더 우월한 대우를 해준다. 이런 사례를 보면 여타 IT 기업이다 보니 직원들의 이직과 퇴직이 잦을 것 같지만 책 속의 통계수치로는 그렇지도 않았다.


또, 앞서 언급했듯 <퓨어 소프트>의 규칙 문제를 되짚어 직원들이 쓸데없는 규칙에 얽매여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막도록 했다. 휴가, 출퇴근, 출장비 같은 회사에서 지출하는 비용의 기준을 없앴다. 규칙은 단 하나 "당신의 결정이 넷플릭스에 도움이 되는가?" 이것뿐이다. 1등석으로 해외출장을 가든 이코노미로 가든 따지지 않는다. 그 결정이 넷플릭스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따질 뿐이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직원들에게 주어진 폭넓은 자유가 결국 방만한 결과를 만들 거라고. 하지만 리드의 생각은 좀 달랐다. 어차피 규칙의 틈을 이용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을 걸러내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와 비용보다는 자유를 통해 얻는 소득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시스템이 정착되는 순간 선순환의 사이클이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참 멋진 생각이지만 내가 경영자라면 과연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직원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다면 섣불리 결단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회사는 리더가 자리를 비우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보니)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 회사는 직급 정체가 심하다. 쉽게 말해 부장과 과장이 넘쳐나는 역 피라미드 형태의 인력 구성을 가지고 있다. 제조업이다 보니 성장할 때는 신입을 많이 뽑아서 현장에 수혈하다가 성장이 정체되고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리쿠르팅을 줄였고 가끔 멈추기도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역피라미드다. 고정비 절감을 무기로 엔지니어들의 직군 전환이 잦다 보니 깊이 있는 노하우를 쌓기 어렵다. 빠진 곳을 채우는 조직 간 인력 배분이 먼저다. 그러다 보니 조직의 유연성은 떨어지고 다년차 직급이 한 곳에 몰리면서 승진이 정체되었다. 점점 물이 고여가는 것이다.


또 회사의 규칙이 너무 많다. 많이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없어진 것은 출근 시간에 대한 규제와 윗사람이 보내던 무언의 눈치와 압박이다. (물론 이것도 굉장히 크다)

부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특별히 정해진 출근 시간 없이 회사에 출근해 8시간 일을 하면 된다. 자유롭다. 하지만 수직적인 조직체계 때문에 회의시간 배정되고 규칙적인 회의가 만들어지면 회의 준비를 위한 회의와 자료를 만드는 공수가 생긴다. 그러다 보니 회의 시간을 기준으로 더 앞 시간, 또 더 앞 시간… 이러다 보면 새벽에 출근하게 된다. 말은 자율출근이지만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하루정도 늦게 출근할 수 있는 유연성이라고 보면 된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규칙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식사 규칙과 마무실 마스크 규정도 생겼다. 하지만 이런 규칙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이미 규칙에 익숙해져 버린 존재가 된 것이겠지.


이런 조직생활을 하던 중 이 책 <규칙 없음>을 읽어보니 삼성이 혁신적인 기업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3가지 이유를 정리해볼 수 있었다.



 

① CEO의 책상


언젠가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 책상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회사원들은 대부분 놀랐을 거다. 넓은 사무실에 빼곡히 들어선 책상 중 한 곳이 바로 세계 TOP 레벨의 페이스북 CEO의 사무실이었다. 보통의 사원과 다를 바 없는 책상과 사무용품들, 흔한 파티션조차 없는 그곳이 바로 그가 일하는 공간이었다. 책상부터 이미 권위와는 멀었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의 자리도 저커버그와 다르지 않았다. 뻥 뚫린 사무실의 책상 하나가 CEO의 공간이었다. CEO와 직원들 사이에 벽이 없고 문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돌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그런 마주침 속에서 "창의력과 생산력은 올라가겠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좌) Facebook CEO의 책상, (우) 삼성 CEO실 (by Google)


삼성의 CEO는 명절처럼 가끔 때가 되면 직원들을 찾아온다. 그가 사무실에 오면 수행하는 몇 명이 따르고 하부 리더들은 줄을 서서 만남을 기다린다. 주요 의사결정 회의는 임원들만 참석하고 그들이 논의해 결정한다. 그나마 최근 들어 CEO가 직원들을 만나는 활동이 제법 늘었다. 그래도 여전히 경외감이 든다. 친근함은 없다. 넘사벽 같은 존재감이기에 다가가기 힘들다. 위 그림에서도 표현했지만 CEO의 위치는 소통 ROUTE를 결정한다. 삼성의 소통방식은 단방향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별도의 사무실과 높은 파티션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혁신의 물길은 꾸역꾸역 오르다 멈출 것이다.




② 외부 경쟁 vs 내부 경쟁 (경쟁 상대)


요즘이 회사 평가기간이라서 그런지 눈에 확 와닿은 문장이 있었다.

“다른 기업과 경쟁하기도 바쁜데, 왜 내부의 인력이 경쟁을 해야 하죠?”

반 등수, 전교 등수, 전국 등수를 매겨가며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던 시대를 살았던 탓일까? 여타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삼성은 상대평가로 인사고과를 매긴다. 이런 평가체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30% 정도는 상위로 배정되어 급여가 오르고 승급 점수를 얻는다. 60%는 보통이고 10%는 급여가 감소한다. 회사 내 인재들 간의 경쟁, 다시 말해 내부 경쟁을 통해 성과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CEO는 항상 말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세상과 경쟁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옆사람을 이겨야 내 봉급이 오르고 잘리지 않는다. 리더들이 항상 얘기하는 주인정신을 가지고 넓은 식견으로  결정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판단하기에는 현실의 경쟁이 너무 버겁다. “회사에 도움이 되나?”라는 질문을 옆 동료에게 한다면 배부른 소리 하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당장 이 공간에서 순위 싸움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외부로 눈을 돌릴 수 있을까? 농장을 확장해야 하는데 현재 나무에 열린 사과를 나누는 것이 기준이다 보니 자꾸 남의 조각이 더 커 보이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


<오징어게임> 결국 내부경쟁!!!


분명 삼성의 평가체계는 바꿀 필요가 있다. 삼성에는 최고 결정 기관이라고 알려진 비서실 -> 구조본-> 미전실 -> 사업 지원 TF 같은 옥상옥이 언제나 존재했다. 최상의 기관 외에도 각 사업부 별로 인사과라는 평가담당 조직이 존재하다 보니 어떤 평가도 투명하지 않아 보인다. 행정부의 비리를 감시하는 감사원이 있지만 감사원을 감사하는 조직은 부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감사원은 검찰이 감시하지만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보아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치열한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경쟁해서 그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이 현재 지휘자로 군림하고 있기에 같은 방법을 고수한다. 내 방법이 최고이자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위 속에서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평가 방법을 바꿔야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방법으로 바꿔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아무도 확실한 답은 모른다. 다만 지금의 방법이 틀린 것만 알 뿐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이런 내부 경쟁의 평가법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 남의 실수를 드러내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타 부서를 공격해야 우리 부서의 위상이 높아진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줄은 알지만, 그건 책에 나오는 말이고 일단 내 배를 채워야 남이 보이는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아직 회사의 조직문화는 남을 쫓기에 급급했던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아쉽다.      




③  Get vs Cut (창의력)


"숙제”라는 말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던지는 과제로 알고 있었다. 회사 와서 수많은 숙제를 받기 전까지는.


회사는 언제나 창의력 있는 인재를 원한다. 창의력(Creativity)이 뭘까?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듯, 무언가를 주입해야 창의력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앞에서 언급한 숙제라는 단어가 여기서 원인으로 등장한다.


회사에서 풀어야 하는 수많은 숙제들, 우리는 이 숙제 속에서 업무의 창의력을 발견하고 키워야 한다. 왜냐면 숙제를 하는 것(문제 해결)이 바로 회사에서 하는 주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결국 괜찮은 숙제들이 창의력을 만들 소재가 된다.


<규칙 없음>에서 언급하는 넷플릭스의 숙제를 보면 넷플릭스가 어떻게 창의적 기업이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특별한 양질의 숙제를 진행하기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은 버려라. 숙제는 모두 거기서 거기다. 본질은 첫째 숙제를 내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숙제를 하는 사람이 사용 가능한 방법의 권한이 어디까지인가?이다.


넷플릭스는 스스로 숙제를 만들고 조직을 구성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결과를 낸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이걸 해도 될까요?” 같이 상급자에게 허락을 구하는 절차가 없다. 본인이 최전선의 결정자라는 인식, 내 판단이 곧 결정 물이라는 소명과 책임이 바로 창의력의 시발점이다. 생각해보라. 내 결정에 따라 회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깊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 능동적인 인재를 만들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그것이 바로 창의력 뿜뿜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텃밭인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페이스북 칼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었다. 사용자들은 단순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지만, 페이스북 직원들은 거의 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랜덤 하게 몇% 의 사용자들을 수집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페이지를 선보이며 통계적 결과를 수집한다. 누구의 결정도 필요 없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수억 명이다 보니 몇% 의 모집단이라고 해도 수백만 명이다. 이 모집단을 통해 유효한 결과를 얻으면 그것을 반영하기 위한 의견을 수렴하고 확정이 되면 정식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개발자들이 페이스북을 자신의 놀이터로 활용하며 지적 유희를 누리는 활동이 바로 일이 되는 회사가 바로 창의력 넘치는 페이스북을 만든 원천이다.


삼성은 어떠한가? 물론 삼성도 어렵고 도전적인 숙제로 넘쳐난다. 또, 담당자들을 책임감을 가지고 숙제를 해내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의 자율성이 매우 부족하다. 내가 결정해서 무언가를 진행하는 것은 내가 그 결정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 위치가 피라미드의 최상단이 아니라면 내 의견보다는 상위 리더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를 실행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된다.


지원은 풍부하다. 하지만 그 지원을 받기 위한 절차 또한 풍부하다. 회사의 경비를 쓰기 위해서는 예산을 배정받아야 하고, 배정받기 위한 기안을 올려야 하고, 배정을 받으면 다단계의 결재를 통해 실행을 해야 하고 실행 후에는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결과보고를 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업무에 필요한 노트 한 권을 사는데도 족히 하루는 넘게 걸린다는 말이다. 공무원들이 일하는 시간보다 영수증 붙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우스개 소리를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피라미드 조직의 특성상 대표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고 가장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 그의 말은 언제나 맞는 말이고 그가 요청하는 숙제는 최우선 과제이며,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업이다. 문제가 주어졌을 때 문제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만들어 내야 하는 결과에 연연한다. 링컨은 한 시간 동안 나무를 베려면 50분간 도끼날을 갈겠다고 했는데 이런 원론적인 고민이 부족하지 않은지 물어보고 싶다. 


또, 실행만으로도 벅찰 만큼 숙제가 많다. 고민보다는 실행력을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제조업의 당연한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제조업이다 보니 모든 일을 제조업 관점에서 풀어내기 때문에 그런 걸까? 물론 꼭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삼성에서 일해본 경험에 비춰보면 생각할 시간보다는 실행력을 뽐내는 것이 훨씬 더 일 잘하는 사람으로 비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좀 과장해서 비유해보겠다. 대표가 하나의 과제를 주고 한 달 뒤에 확인하자고 말을 했다. 그럼 사업부장은 대표이사 보고 일주일 전에는 자신이 먼저 보고받고 보완하길 원한다. 그럼 팀장은 어떨까? 그는 사업부장 보고 일주일 전에 보고서를 받아보기를 원한다. 그럼 그룹장은? 팀장 보고 2~3일 전에 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결국 한 달 기한의 과제를 맨 말단의 실행 주체는 일주일 내에 해결해야만 한다. 조금 과장되었지만 보통의 회사원이라면 납득할 것이다. 이렇다 보니 생각 따위는 접어두고 일단 문제부터 풀기 바쁘다. 기존에 풀던 방법으로 풀어보고 풀리면 해결, 안 풀리면 그때가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부족하고 결과는 빈약하고 창의력은 부족하다. 


삼성이 Fast Follower일 때는 이 방법으로 많은 선두 기업들을 추격했고 제쳤다. 하지만 이제 1등을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는 벤치 마크할 대상이 없다. 오로지 고민과 생각, 의견수렴, 논의, 토의 같은 수평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활동이 주가 되어야 No 1을 넘어 Only One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위 3가지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두 기업 간의 차이점은 수없이 많다.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회사 구성원을 팀(TEAM) 원으로 바라보는가? 가족으로 바라보는가? 에 대한 차이도 크다. 또 위에서 수차례 언급했던 삼성의 피라미드 조직체계와 반대로 넷플릭스는 나무형(Tree) 조직을 표방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규칙 없음>을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삼성을 폄훼하려는 의도의 글이 아니다. 나는 삼성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이곳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가정을 꾸려 삶을 유지하고 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사고가 경직되고 불합리를 인정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면서 회사에 대한 불신과 조직에 대한 부조리에 험담이 많아졌다. 이럴 때 한 번씩 읽게 되는 신생기업의 유연한 경영기법은 내 머릿속 관념을 청량감 있게 털어낸다. 이런 생각과 고민 속에서 나온 글이다.


다소 불편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넷플릭스 #삼성 #혁신기업 #기업문화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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