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130년 전 프랑스와 똑같다 <나는 고발한다>읽고
최근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읽었다.
읽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었다. 1890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 한 세기 반을 넘어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 현재의 시간에 디졸브 되었다.
내가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얼마 전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과 닿아있을 거라 짐작한다.
스무 살 갓 대학생이었던 시절, 선배의 권유로 도서관에서 예약을 걸어놓고 찾아 읽었던 너덜너덜했던 그 책의 초판본이 생각난다. “금서였다”라는 선배의 말에 도둑처럼 조심조심 숨어서 읽었다.
그 책의 시작이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세계사 시간에 “시험에 잘 나오는 문제”라며 암기했던 단어였다. 당시 이 책을 읽었지만 특별히 남는 게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사가 워낙 편협해서였을거다. 교과서에서 필수로 암기해야 하는 것들 외에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사건들조차 연대순으로 나열하지 못하는 실력이었으니.
그리고 25년이 지나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드레퓌스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스무 살 그때의 나보다는 역사에 많은 관심이 생겼고 정치와 언론, 법에도 제법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에 굉장히 진지하게 정독했다. 예전 어느 강연에서 유시민 작가는 <드레퓌스 사건>을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생한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지만 그 파장은 20세기 세상을 바꿔버린 굉장히 의미 있게 고민해봐야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의 불편한 관계(보불전쟁 후 알자스로렌 지역을 뺏기고,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 이야기) 속에서 내셔널리즘과 민족주의가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프랑스 장교였던 드레퓌스 대위의 필체가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빼돌린 문서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게 되고 군인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유배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드레퓌스 대위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국가권력은 그의 인권을 유린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모토로 인권 및 평화의 상징 같았던 프랑스에서 이 같은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 발생했고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지식인들이 봉기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드레퓌스 파와 유죄를 주장하는 반 드레퓌스 파가 나뉘어 격렬한 정치적 투쟁이 일어나고 드레퓌스 파에는 진보/좌파/공화파/사회주의자들이, 반 드레퓌스 파에는 군부/로마 가톨릭/왕당파들이 자리하여 치열하게 투쟁했다.
훗날 진실은 밝혀졌지만 그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당시 권력이었던 군부/법정/언론이 합심하여 사건을 비틀고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국민을 진보와 보수의 양쪽으로 편 갈라 버렸다. 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수의 정의로운 지식인들(에밀 졸라)이 펜으로 투쟁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 맹세하건대,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그의 무죄에 제 인생을 걸고,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이 엄숙한 시간, 인류의 정의를 대표하는 재판부 앞에서, 국가의 광명인 배심원 여러분 앞에서, 전 프랑스 앞에서, 전 세계 앞에서 저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단언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룬 모든 것, 제가 획득한 명성, 프랑스 문학의 확산에 기여한 제 작품들에 기대어 저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단언합니다. 만일 드레퓌스가 무죄가 아니라면, 제 작품이 사라져도, 제가 이룬 그 모든 것이 무너져도 좋습니다! 그는 무죄입니다.
<나는 고발한다> 중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진술에서
사실 이 사건은 결국 법정에서 유죄로 확정되었고,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해 드레퓌스 대위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당시 에밀 졸라는 죄가 없는데 사면은 말이 안된다며 대통령에게 다시 서한을 보낸다. 이런 여러 과정 속에서 에밀 졸라의 행동에 분노한 권력자들은 언론을 통해 에밀 졸라에 대한 흑색선전과 비방을 쏟아내고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 속의 고발 내용을 근거로 기소하여 징역 1년을 선고받게 만든다.
더 자세한 역사적 사실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100년이 훌쩍 지난 이 사건과 현재 2021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사건들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어쩌면 이건 당연한 듯), 언론이 이 정치적 싸움에 기름을 붓는다.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언론에 대다수 국민들의 눈은 멀어간다. “설마”라며 생각했던 의혹이 “그랬다더라!”라는 확신으로 둔갑하여 SNS를 타 넘고, 국민이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정치인들도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선택을 강요한다. 축제가 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이 과정이 치졸하고 더러운 욕망의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자연은 그 어떤 더러운 것들도 시간이라는 사이클을 돌려 정화해낸다. 지금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어쩌면 정화되지 못하는 그 어떤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이 사태의 결론으로 혹시라도 대다수 국민들이 분출구 앞에 줄지어선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를 문명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나는 “야만의 시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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