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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07. 2021

광교 신도시를 둘러보다가 눈물이 났다

|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



얼마 전 아내와 광교 아파트를 구경하러 갔었다. 신문 지면을 통해, 여러 부동산 카페 소식 글을 통해, 아내의 입을 통해 “엄청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광교 신도시였지만 내 기억 회로에서는 아직 “광교”라는 단어가 각인되지 않아 몇 번을 연상해야 떠오르는 그런 비중 없는 단어였다. 그만큼 낯설고 어색한 단어였다. 한번 둘러보자는 아내의 말에 지도를 찾아보고서 알게 되었다. 광교 그곳은 대학시절 수없이 즈려밟고 다녔던 동네의 새 이름이었다.

 


1995년 아주대학교 근처 원천 유원지가 있던 곳. 그때는 원천동이었지 “광교”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나만 몰랐을 수도) 아주대학교는 내게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다. 베프라고 믿고 있는 두 친구가 95년 그곳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한놈은 전자과에 또 한놈은 기계과에 나란히 입학했다. 부산의 한 동네에서 함께 부대끼며 고등학생 3년의 시간 대부분을 함께 공유했던 녀석들이 그곳에서 자취와 하숙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주말이면 아주대행 버스를 타곤 했다. 내 학교가 있던 천천동 아파트 앞에서 3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수원 시내를 가로지르면 아주대 입구였다. 수업에 무척 불성실했던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버스를 탔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가방 속 CD 플레이어를 켜고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수원 시내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아주대 앞이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휴대폰이 흔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기념으로 타지로 떠난 아들과 연락이 되어야 한다며 부모님은 삐삐를 사주셨다. 수원 남문의 어느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같은 날 삐삐를 구매한 것도 녀석들이었다. 저 멀리 드라마 <종합병원>의 무대였던 대학병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면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정류장은 휑한 벌판이었다. 정문 너머 큰 병원 건물과 운동장이 보이는 전부였다. 갓 포장된 정문 앞 도로 옆으로 새 건물들이 하나 둘 불을 켜고 있었고, 직선 길을 따라 옆으로 상가들이 하나 둘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녀석들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며 정문 근처의 새로 생긴 만화방에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다시 광교로 돌아가서, 광교 호수공원으로 가기 전 일부러 아주대 정문 앞을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 예전에 부리나케 드나들던 아주대 정문 앞은 이제는 기억을 짜 맞추기도 힘들 정도로 완벽히 변해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때가 2003년이었으니 20년 가까이 지나버린 탓이다. 그곳의 발전은 무서울 정도였다. 친구들과 자전거로 움직이던 곳은 이제는 더 이상 자전거로 다니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들이 붐비고 있었다. 처음 지어져서 위용을 자랑하던 월드컵 경기장도 양쪽으로 도로가 생기면서 동네의 한 부분으로 변해있었고 두 녀석이 함께 자취했던 식당 건물이 있던 집도 큰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아내에게 “예전에 이곳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라며 너스레를 떨려고 했는데 길을 몰라 헤맬 것 같아 말도 꺼내지 못했다.


 

1999 제대하고 앞서 언급했던 아주대 베프 둘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녀석들과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가 파리였다.  녀석의 초등학교 동창이 그곳에서 유학을 하고 있어서 우리 셋은 친구 아파트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며칠 단위로 여행하고 돌아와 쉬면서 체력을 보충했다.

그때 파리는 지하철 14호선이  개통된 시점이었다. 지하철의 처음부터 끝까지 차량의 중간문 없이 하나의 통으로 연결된 지하철이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 아파트는 12호선 Convention역에서 걸어서 5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역을 걸어 나오면 앞에 극장이 있었고 꽃집과 슈퍼 그리고 우체국이 있었다. 나는  극장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을 불어 더빙판으로 관람했고 우체국에 들러 한국으로 엽서를 자주 보냈었다.


15년 뒤, 회사 10주년 휴가 때 아내와 둘이서 열흘간 파리를 여행했다. 다시 방문한 파리는 15년이라는 세월을 잊은 듯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문화재 가득한 유적지는 말할 것도 없고, 친구가 지냈던 아파트와 그 동네의 건물들도 내 기억과 거의 일치했다. 일부러 그때 머물렀던 동네에 숙소를 잡아 며칠을 새벽에 일어나 이곳저곳 걸어보았는데 15년 전의 슈퍼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외국이었지만 참 정겨운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


 

아내와 광교 호수공원을 돌아보면서 예전에 친구와 자전거로 딱 한번 가보았던 원천 유원지를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분명 호수는 그대로 일 텐데 주변의 길은 모두 데크가 깔렸고 그 옆으로는 포장된 도로와 차들이 즐비했다. 호수 옆으로 높은 아파트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분명 그림같이 멋있어 보이고 편리해 보이는 정말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롭게 현재를 그려놓은 동네 같았다. 술 취해 친구와 걸었던 길, 친구와 함께 허기를 달랬던 밥집은 찾기 어려웠다.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


개발 호재가 생기고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뛰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고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듯 기존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자꾸만 외곽으로 쫓겨나고 변화된 수준에 걸맞은 자금력을 갖춘 가게와 상인들이  곳을 메운다. 이렇듯 주거와 생활에 대한 불안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래도 다들   근처에 개발호재가 나기를 꿈꾸고,  덕분에  재산이 불어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런 개발이라는 현대화의 이면에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  녹아내리고 있다. 허름했던 맛집이  건물에 단장하고 재오픈을 하면 이상하게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건 나만의 생각일까?


 

요즘 들어 종로 2가 골목의 비릿한 순댓국 냄새가 자꾸만 생각난다. 쓰러질 것 같은 가게지만 머리 숙여 들어가면 따뜻한 술국과 소주와 이모들의 손맛이 있었다. 인간은 나이 들수록 추억을 먹고산다는데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아쉽다.


 #광교 #아주대 #부동산호재 #호수공원 #추억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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