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다가
故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천천히 읽고 있다. 굳이 “천천히”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그의 문장은 학자 같은 미려함은 없지만 대신에 인간미가 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으면서 느꼈던 세상에 대한 사랑이 이 책 속에 쓰여있는 문장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영문학자답게 외국 고전문학과 시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과 잘 빗대어 표현해놓아서 고전 문학(특히 詩)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특히 고전을 자신만의 한국적 문장으로 만들어놔서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들을 키워가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책을 가까이하고 열심히 글도 써보고 있지만 태생이 이공계 출신이라 이런 감성을 가진 분의 글을 읽을때면 나의 볼품없는 문장력이 한탄스럽다. 내 업무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서 온통 머릿속에는 논리 회로와 수학적인 계산이 맴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인문학도이길 바란다. 내 삶이란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존재를 정의해가는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학도지만 인문학도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공학의 정점은 로봇이다. 로봇은 기계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 그래서 공학은 감정이 없다.
인간은 로봇을 만든다. 로봇을 만든 인간은 감정이 있다. 로봇을 만들 때 인간은 완성될 기계를 생각하며 한껏 감정을 불어넣는다. 피가 흐르지 않고, 뼈와 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강철 프레임이 있지만 실상 로봇도 감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코딩을 할 때 이 코드를 통해 오류나 오차 없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무언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이 코드를 통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편리해질까!’, ‘그들이 시간을 벌어 다른 일에 투자할 수 있을까!’, ‘덕분에 일찍 퇴근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0과 1로 채워진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수치의 반복이지만 그 속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인간 냄새가 잔뜩 묻어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나는 공학도도 인문학도가 틀림없다고 착각하며 오늘을 산다.
#장영희교수 #문학의숲을거닐다 #인문학 #공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