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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14. 2021

추운 겨울이면 하얀 목련 꽃이 떠오른다

| 20년 전의 추억

직접 찍은 지난봄의 목련


살을 에는듯한 추위와 얼마 남지 않은 낙엽이 차가운 바람을 따라 길가의 보도블록 턱을 줄지어 굴러다니는 이 시기면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주 1996년 봄이 떠오른다. 대학 2학년이지만 다시 1학년에 재입학했던 그때. 나 자신의 역량을 과시해 스스로 재도전했던 기회를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다시 돌아온 캠퍼스에 서있었던 그때 말이다. 개강 전 4인 기숙사에 배정받고 그 방에 들어가던 순간, 그 차갑고 눅진했던 공기의 느낌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절망했고, 슬펐고, 막막했다.


나는 1년 뒤 1997년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과 동기들과 선배들의 얼굴을 다시 본다는 것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져 말 붙일 꺼리를 만들어야겠다며 평생 써보지도 않던 안경을 하나 사서 썼었다. 무엇으로라도 내 얼굴을 가리고 싶었던 속마음이었겠지. 아무튼 나는 극도의 불안하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려 이리저리 교정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날씨는 무척 추웠고 교정 잔디밭은 녹지 않은 눈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추위를 달래려 다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오전에는 없던 룸메이트 3명이 각자의 침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4학년 선배 한 명, 2학년인 나, 1학년 신입생 두 명 이렇게 네 명이었다. 선배는 누가 봐도 제대 후 복학한 도서관 죽돌이 같았고, 신입생이라고 인사는 했지만 그중 한 명은 삼수생이라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또 한 명은 현역이라 한 살 어렸다. 남자 넷이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각자의 침대에 누워 무언가를 하려는데 방장이었던 복학생 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창문 밖에 보이는 목련이 떨어질 때쯤 같이 한잔하면서 서로 친해지자. 내가   살게


“네. 알았어요.”라며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목련이 떨어질 때… 그게 언제일까?’



방에 들어올 때마다 창밖의 목련에 눈이 갔다. 호빵같이 하얗던 목련 꽃의 아랫부분이 조금씩 갈색으로 변하더니 어느 날 꽃잎이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방장 형은 아침 일찍 방을 나서며 목련 꽃이 떨어졌으니 오늘 저녁 xx에서 만나자.”라며 도서관으로 떠났다. 며칠 새 친해진 우리 셋은 함께 아침을 먹으며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일이 벌어질까?’ 궁리했다.


교정은 신입생들의 열정으로 완연한 봄이었다. 날은 여전히 추웠지만 여학우들의 외투는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하필 그날 시간표를 착각해서 영어 교양 수업을 잘못 들어갔는데 그 강의실에 룸메이트였던 삼수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형이랑 수업 같이 듣자며 나는 수강신청을 정정했다. 고향이 같았던 삼수형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덕분에 건축과였던 형의 동료들도 여러 명 소개받아 나는 생각보다 빨리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넷은 새로 생긴 맥주집에서 술을 마셨다. 과일 안주와 쥐포 같은 안주와 맥주를 마시며 만난 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서로를 다독여주는 사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방장형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아야 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마음을 못 잡고 있는 나에게 “나중에 후회 말고 지금 공부해.”라며 수업 빼먹지 말고 수업이 없거나 끝나면 도서관에 와서 함께 있자고 말했다. 또 신입생들에게는 가장 좋은 시기라며 1년 즐겁게 놀아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우리는 실컷 술을 마셨고, 방장 형이 계산했다. 내가 2차를 사겠다고 했지만 형은 내일 아침 수업이 있다고 먼저 기숙사로 들어갔고 남은 우리 셋은 다른 술집으로 옮겨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기숙사를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해 1년은 학교보다는 그냥 나를 놓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모습을 방장형에게 보여주는 것이 미안했다. 가끔 기숙사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잤는데 그러다 방장형을 만나면  “형 드세요! 저는 기숙사에 잘 안들어와서요.”라며 내가 가지고 있던 기숙사 식권을 건네곤 했다.


나는 거의 매일 서울의 이곳저곳을 걸었고, 날씨가 별로인 날은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읽었다. 다행히 96학번 친구들이 생겨서 가끔 수업에 참석했고 수업을 마치면 녀석들과 운동하고 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20년이 훌쩍 지나 되돌아보니 1996년 그해는 내게 가장 소중했던 시기였다. 스스로 침잠했었고, 혼자 힘으로 또 친구들 덕분에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없을 만큼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친구들과 선후배들 덕분에 더 깊은 구덩이로 빠지지 않고 스스로 빛을 찾아 올라올 수 있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오롯한 나 스스로의 존재로 걸어갈 힘이 생긴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면 자꾸만 그 시기가 떠오른다. “목련이 떨어지면”이라는 형의 말이 자꾸만 연상되는 것은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오늘 아침 길을 걷는데 보도블록을 따라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련을 생각했다.


겨울이 왔다는 것은 봄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기에 나는 목련을 생각하는 것이겠지. 1996년 나에게 너무나 가혹하리만큼 찬란했던 그 봄을 다시 맞이할 수 있기를 기약해본다.


#목련 #겨울 #봄을기다리다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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