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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17. 2019

나의 여행의 이유

여행은 필연을 통해 우연을 기대하는 활동입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RESET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일상은 반복이다. 반복은 지겨움을 낳는다. 지겨움은 나태를 키우고 나태는 나를 잠식한다. 그래서 이런 메비우스의 띠 같은 반복을 끊어줄 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여행이 그랬다.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기대의 출발선에 나를 세우는 일이다. 꽉 짜여진 일상의 틈을 비집고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내 삶의 Reset 버튼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장소를 선정하고, 날짜를 맞추고 교통편을 예약하는 그 순간 나는 이미 타우린을 1000ml 정도 마신 듯 정신적 청량감에 젖는다. 메모장을 열어 준비물을 준비하고 지도를 열어 그곳의 길과 내 동선을 살피고 있으면 나는 이미 여행 중이다.

여행은 기대가 전부인 활동이다. 출발하는 아침부터 하나씩 삐그덕 대는 이벤트들은 나에게 두려움과 자극을 준다. 하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여행의 힘듦이기도 하지만 여행의 목적이기도 하다. 레디메이드 된 삶에서 툭 하고 옆길로 샌듯한 어쩌면 조금 당황스럽고 어쩌면 조금 짜증 나는 이런 일들이 나의 기대를 좌절로 변질시키려 달려든 악마들의 장난 같다. 하지만 이것들을 견뎌내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그런 자극들 덕분에 더욱 즐거워지는 게 바로 여행이다.





3년 전 하와이 여행을 떠나던 날, 인천공항 도착 전에 <국제 운전 면허증>을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진짜 식은땀이 났다. 우리 가족의 하와이 여행은 시작과 끝은 모두 렌터카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게 사실을 말했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 면허증을 재발행하려면 하루를 지체해야 했고, 그러면 항공권부터 숙소까지 모두 차질이 생겼다. 집에 다녀오면 나 혼자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하고, 그래도 가족은 하루를 하와이의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 나는 퀵서비스와 아파트 관리소 분들을 동원해서 식탁에 고이 모셔져 버린 나의 면허증을 가지고 공항으로 올 수 있도록 요청했다. 3시간 남짓 남은 출국시간, 2시간이 지난 후 퀵서비스와 통화했을 때 그는 차가 막혀서 불가능하다고 했고, 나는 비용을 중간 정산하고 그 면허증을 며칠 뒤 하와이로 오는 친구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고 일단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검색을 시작했다.

몇 군데 검색을 해보니 하와이 렌터카에서는 국제면허증이 필요 없고, 한국 면허증만 있어도 된다는 글을 보았다. (어머나!!!) 나는 그 내용을 아내에게 알리며 렌트비를 날리더라도 한국 면허증만으로 렌트가 가능한 렌터카 회사를 찾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국제면허증을 두 사람 모두 신청하자고 했다.

결론은 내가 예약한 마우이섬 Herz 렌터카 회사는 <국제면허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ㅎㅎㅎ 그래서 차질 없이 차를 렌트했으며 예약했던 차량을 건네받아 10분쯤 운전했을 때 엔진에 문제가 생겨 차를 반납하고 다시 차를 건네받았는데 직원이 미안하다면서 BMW 5 시리즈로 변경해 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나는 새 차에 대한 거부감마저 없이(지금 내차랑 같은 차라) 편안하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우이섬에서의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오아후섬으로 옮겨서 렌트를 할 때는 <국제 면허증>이 필요했는데, 그때는 이미 내 면허증을 가진 친구가 도착해 있던 터라 문제가 없었다.

여행이 이렇다. 불완전하지만 완전해지는 과정의 연속. 불안하지만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다.


이런 상황에 내몰리는 나를 마주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머리를 싸매가며 풀어나가는 과정.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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