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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30. 2020

마흔을 걷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으면서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먼 북소리> 중에서



오늘 내가 소개할 책은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이다. 지금 열심히 읽는 중인데,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 앞 커피숍에 들러 다 읽고 귀가할 계획이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흔을 맞이하게 되던 시기에 일본을 떠나 유럽에서 3년을 머물며 겪었던 일들을 에세이 형태로 엮은 책이다. 소설과 달리 현실적이라서 또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하루키는 그리스에서 시작해 시칠리아를 거처 로마와 파리 그리고 런던에 이르는 3년간의 여행 기간 동안 자신의 인생 역작이라 불리는 <노르웨이 숲> (한국 : 상실의 시대)과 <댄스 댄스 댄스>를 집필했다. 그때의 하루키의 생각과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얼마나 매력적인 책인지 모르겠다. 



하루키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 <먼 북소리>는 이상하게도 손이 가지 않았다. 작년 5월 손미나 작가의 첫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 그녀의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의 존재를 다시 깨치게 되었다. 손미나 그녀가 KBS 9시 뉴스 앵커를 내려놓고 스페인으로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라고 했다. 그녀의 스페인 유학 이야기에 한창 고무된 나는 곧바로 중고서점을 뒤져 이 책을 샀다. 그리고 묵혔다. 곧바로 이 책을 읽게 되면 너무 떠나고 싶어서 쓰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뤄둔 걸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얼마 전 봄맞이 서재를 정리하던 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생의 고비가 아닐까 하고, 나는 오래전부터(라고는 해도 서른 살이 지난 후부터이지만) 줄곧 생각해 왔다. 특별히 뭔가 실제로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먼 북소리, p.14>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정신적 위안의 말을 떠벌리며 살고 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는 하루키가 말했던 것과 비슷하게 내게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든든한 부모님 덕분에 돈 걱정 한번 안 해보고 자란 내가 마흔이 되는 시점에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내게 베풀어주셨던 것만큼 해 줄 수 있는 재력을 갖출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서부터, 현재의 직장과 앞으로 다가올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두려움과 함께 걱정으로 다가왔다. 공자는 마흔은 불혹이라고 했다. 어떠한 경우도 흔들림 없는 자아를 뿌리내린 시기라는 뜻인데, 마흔을 맞이한 나는 정말 뿌리가 깊게 박힌 튼튼한 나무인가?라는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 


벌써 마흔다섯이다.(만으로는 마흔셋 ^^) 앞서 했었던 걱정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때의 걱정들로 인한 내 안에 일어났던 수많은 고민들이 여러 생각과 방법을 만들어냈고, 나는 길 찾기 알고리즘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좌충우돌하면서 조금씩 해답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더 나아질 내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도 분주하게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늙음과 쇠퇴가 묻어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생각하는 마흔은 “청춘”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진행형 / 미래형으로 느낀다. 늙음과 쇠퇴는 전혀 아니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먼 북소리, p.15>


하루키가 이런 생각을 했던 1987년 그 때로부터 40년 뒤에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된 나는 위문장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발견한다면 그건 축복이다. 지금부터 나아갈 수 있다는 신호이자 기회다."

- 작가 김경태 -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이유와 자신의 역할도 모른 채 그냥 소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헛되다.”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하루키는 그 시기에 문득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고 한다. 하루키 역시 내 생각처럼 무언가 알아차린 것 아닐까?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먼 북소리, p.17>




아득히 멀리서 “둥~~~둥~~~”하고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 하루키는 3년간의 여행을 떠났다. 손미나는 그 소리에 이끌려 스페인으로 떠났고, 돌아와서는 예전에 그려보지 않았던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내게도 그 소리가 들릴 그날을 학수고대한다. 잔잔하게 내 귓가에 맴돌게 될 그 북소리가 다가올 나의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기회의 울림이 될 수 있도록 예민하게 귀 기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예민하게 온몸의 촉수를 세우고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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