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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30. 2020

친구가 필요한 순간

[0042]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을 이제는 일 년에 한번 만나기도 힘들다.  만나서 부대낄수록 더 깊어지는 게 우정이라지만, 이제는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게 친구다.

- 작가 김경태 -



오래 연락을 못하고 지내다가 만나도 마치 엊그제 봤던 사이처럼 대화가 끊기지 않고 편한 사람이 있다. 내게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랬다.



1992년.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수학했던 친구들과 헤어졌다. 지금은 수영구로 분리된 광안리 근처의 동네에서 동래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전교생 중 나 혼자만 동래에 있는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처음 몇 개월간은 휴일이면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갔지만, 물리적 거리는 점점 소원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니던 학원에서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녀석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친구들 소식을 물어봤더니 그 녀석들을 어떻게 아느냐며 신기해했다. 난 녀석을 통해 내 소식을 전했고 대학 가서 꼭 만나자고 안부를 전했다.



1995년. 대학에 입학하고 어릴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연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과를 알지 못했지만 난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연대에 찾아갔다. 교무처에 찾아가서 녀석의 이름을 말하며 무슨 과인지를 물었는데 그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무작정 정문에서 몇 시간 기다리다 다시 교무처를 찾아서 그 친구에게 꼭 내 삐삐번호를 전달해 달라며 쪽지를 건네주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어릴 때 친했지만 헤어지게 된 친구 중 한 녀석이 연락이 되었다. 1994년 크리스마스 때 친구들이 그리워 중학교 앨범을 뒤져 녀석들의 주소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는데 한 친구가 그걸 보고 부모님을 통해 연락해 온 것이었다. 친구가 나를 보겠다고 부산에서 차를 몰고 5시간을 넘게 달려 대학 기숙사 앞에 왔었다. 반갑고도 놀랬다. 우리는 2박 3일을 함께 놀고 마시며 즐겁게 추억을 회상했다. 그리고 녀석은 진짜 친구가 되었다.



2000년.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했다. 그때 아이러브스쿨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난 이걸 통해서 연대 다니던 그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열심히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5월 27일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초등학교 정모를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부산에서 초등학교 다녔던 녀석들 중 수십 명이 서울에서 대학생으로 또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다. 암튼, 그날을 계기로 녀석과 나는 평생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그날 정모에 참석했던 많은 친구들 중 여러 명이 지금도 가끔 서울이나 부산에서 만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기억의 대부분은 친구와 함께한 순간이다.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며 해결책을 찾았고, 그들의 고민을 듣고 개입하면서 더 친해지기도 소원해지기도 했다. 거의 모든 순간에 여러 친구들이 존재했다. 개중에는 이제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도 있다. 어쩌면 내가 애써 찾아보지 않아서 연락이 끊긴 것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소개해 드리고, 내가 부재중인 순간에도 우리 집에 찾아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밥 먹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여겼던 적이 있다. (내 고등학교 친구 녀석들이 그렇다. 내가 군대 가있거나 외국에 가 있을 때, 명절날 집에 인사드린다는 핑계로 찾아가 술값을 뜯어내는 놈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닌 걸 안다.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직장에서 사귄 친구, 글 쓰면서 만난 친구,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내 흔적이 존재하는 여러 곳에 다양하게 친구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곳에서 나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도움 주기도 때로는 의지하기도 한다.



친구가 필요한 순간은 내가 결핍을 느끼는 순간이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결핍이 느껴지면 자꾸만 친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 녀석 카톡이 왔다. 몇 마디 주고받는 글 속에서 친구 냄새가 폴폴 났다.

이런 게 친구 아닐까? 한다.




- 작가 김경태 -


Photo by Helena Lop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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