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물이 서로 이어져있는 관계
요즘 갑자기 “맥락”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흔히 쓰고 듣는 말인데 어느 순간 이질감이 생겼다고 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은 “맥락”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모호하지만 틀리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 단어를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을까?
그래서 이 기회에 “맥락”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정리해보고자 키보드 앞에 앉았다.
맥락(脈絡) : 脈(줄기 맥) 絡(이을 락), 사물이 서로 이어져있는 관계
context : the situatuin in which something happens and that helps you to understand it (from Oxford)
사전적 의미에서 보듯 "맥락"이란 어떤 상황(말 또는 글, 현상 등)을 전후의 과정과 당시의 정황 등을 따져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똑같은 문장도 어떤 상황에 쓰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갑 : "다음주부터 비가 온다."
을 : "큰일이네. 여행가기로 했는데."
갑 : "다음주부터 비가 온다."
병 : "천만다행이다. 비가 안와서 농사 망칠까봐 걱정했는데."
갑의 말은 똑같지만 대꾸하는 을과 병의 말은 완전히 다르다. 그 이유는 바로 을과 병이 처했던 상황과 관심에서 비가 차지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위 대화가 간단히 알 수 있는 맥락을 통해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사례다.
우리는 특별히 배우지 않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대화나 말, 글 등을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 인식하는 맥락은 자신이 얼마나 깊이 그것에 대해 알고있고 생각해보았고 탐구했느냐에 따라 이해의 깊이를 달리한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 건축업자가 보는 것과 의사가 보는 것, 과학자가 보는 것, 법학자가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사례로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 구성을 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예를 들어 철학, 인문학, 윤리학, 건축학, 의학, 과학 등)의 전문가들이 함께 출연하여 같은 상황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방향들을 제시하며 토론의 깊이를 더해간다. 각자 깊이 탐구한 분야가 달라서 중점적으로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을 도출할수도 있고 때로는 진부한 말싸움으로 이어질수도 있다.
또한 말과 글을 맥락으로 이해해야하는 것은 비판적 듣기/읽기에 필수적이다. 특히 정치가들의 말은 맥락을 따져 한번 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구설에 오른 정치인의 말 하나를 옮겨본다.
법무부 장관 : (A) 다 조작이고 증거가 하나도 없다면 대한민국 판사 누구라도 100%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후)
법무부 장관 : (B)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고, 이번 결정도 그 내용이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위 인터뷰에서 각 문장을 따로 읽어보면 둘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두 말이 한사람의 입에서 시간차를 두고 나왔다는 것을 안다면(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같은 상황을 180도 다르게 해석한 것이라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첫번째 말은 "죄가 없다면 영장은 발부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인데, 두번째 말은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지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물론 죄가 있다면 반드시 영장이 발부되고, 죄가 없다고 무조건 영장이 기각되지는 않는다. 영장발부 여부는 [죄있음=영장 발부, 죄없음=영장 기각]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대외적으로 첫문장(A)을 발언했기 때문에 (B)라고 말한 것은 상황이 바꼈기 때문에 말을 돌리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글이 길었지만 요지는 이거다. "맥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