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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02. 2020

이 책을 다 쓸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임경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꼭 이 책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키 자신이 직접 쓴 자기 생활과 생각에 대한 글이 아닌, 제3자 (임경선 작가)의 눈과 수집한 자료로 본 하루키는 많이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하루키를 이해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앞서 몇 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하루키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은 내게 작은 선물 같은 책이었다. 읽게 된 것에 감사하다.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집필로 유명한 하루키는 21세기 최고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거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다. 왜소했고 어찌 보면 왕따 같은 그런데 매일 책을 보고 있는 그런 아이. 그의 어린 시절 기록에서 내가 주목한 점은 영어소설을 자기 손으로 변역한 부분이다. 

최근 몇 년 새 나는 몇 권의 책을 필사했다. 완전히 베껴 적은 책도 있고, 70~80% 수준으로 요약하며 적은 책도 있다. 왜 필사를 하게 되었는지는 곧 출간될 내 책에서 언급을 해두었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이래야 한 명이라도 낚이지 않을까? ^^)  지금까지 필사한 책은 <어린 왕자> <도덕경> <논어>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손자병법> 과 <제임스 앨런의 365일 명상>이다. 

하루키는 학창시절 고베에 살면서 고베항으로 들어오는 미국 군인들의 페이퍼북을 싼값에 구입해 직접 변역해서 읽었다. 이미 일본에서 출간된 책들은 거의 섭렵을 했고, 번역되어 출간된 책 외에 현재 미국 젊은이들이 관심 갖고 있는 책을 조금씩 읽어간 것이다. 내가 필사를 해보면서 느낀 점이 필사를 해보면 작가가 쓴 문장 하나하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형용사나 부사의 쓰임과 선택한 단어와 서술어까지 조목조목 살펴보게 되고,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밖에 없는 독서법이 필사다. 번역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간 독서법일 것이다. 외국어로 쓰여있는 문장을 사전을 찾아가며 단어의 여러 의미 중 작가가 생각한 의미를 유추하며 한 문장씩 읽어가는 것, 그런 행동이 지금의 거인을 만든 초석이 아닐까?

하루키는 그 당시 미국의 현대 소설을 통해 존 업다이크 같은 당시 신예 작가들의 문장을 여느 일본인들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고, 번역 실력이 늘면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번역해 출판을 하기도 했다. 그의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번역 작업은 그의 소설을 일본이라는 나라에 머물지 않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또, 로큰롤과 재즈를 받아들이고 심취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 모든 게 10~20대 초반에 하루키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의 이런 행보를 보면서 나도 욕심이 났다. 꾸준히 원서를 읽겠다며 사놓은 페이퍼 북이 몇 개나 있는데 아직 먼지만 쌓여있고 손이 가질 않는다. 오늘부터라도 계획을 세워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시작해야겠다. 


오늘 수집한 문장은 “나는 소설을 쓸 때마다 기도해요. 이 책을 다 쓸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라는 문장이다. 읽으면서 “풋”하고 웃음이 났는데,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 소설은 분명 더 괜찮은 내용일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거다. 지금 쓰는 책이 유작이 되면 자신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죽게 된 거라서 안타깝다고 한다. 또한 쓰던 중간에 죽게 된다면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데, 자신이 맺지 못한 결론을 타인이 맺거나 상상하는 것도 싫은가 보다. 욕심쟁이.

‘갑자기 내가 죽는다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이 슬퍼하고 노여워할 일이다. 아내가 또 아이들이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서운할까? 다행일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것이지만 그 또한 시간에 의해 잊힐 것이다. 예전 나의 장례식에 대한 글을 썼던 생각이 난다. 

”나의 장례식. 내가 주인공인데 나는 없다.” 이렇게 시작했던 글...

암튼 하루키의 문장을 통해 죽음과 번역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역시, 독서는 즐겁다.

- 작가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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