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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03. 2020

독서는 정중동(靜中動)이다.

<독서의 맛> 중에서



정중동 (靜中動)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을 감추고 있다.

<채근담>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독서에 대한 특징인 "정중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이 내용은 곧 출간될 두번째 개인저서 <독서의맛>에 있는 내용으로 그 중 일부를 발췌해서 공유합니다.





학창시절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겨웠다. 힘겹게 잠을 깨면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 했고, 짜여진 시간표에 맞춰 수업을 듣고 공부해야 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중간고사와 기말 고사를 끝냈고 그러다 보면 한학기가 지나가 있었다. 몇 번을 똑같이 반복해야 이 생활이 끝날까?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이런 하루가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군대에 입대한 첫날 밤, 보급품으로 받은 작은 수첩에 달력을 그렸다. 2 년 2 개월, 790일의 날짜를 빼곡히 쓰고 오늘 날짜에 가위표를 그렸다.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난 것이 아니라 789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늘같이 똑같은 하루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나를 위로했다. 매일은 버겁겠지만 다시 이 수첩을 열어보게 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눈뜨면 며칠이 지나가 있기를 기대했다.


요즘 나는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갑다. 앞으로도 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 어제처럼 오늘도 내 얼굴에 웃음이 많았으면 좋겠고, 어제처럼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이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제처럼 오늘도 내 걱정을 해주시는 부모님이 항상 그 자리에 계셨으면 좋겠고, 어제처럼 오늘도 내 노력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어제와 모든 게 똑같지만 나만 조금 성장해 있기를 바란다. 난 참 욕심이 많은 놈이다.



"지구는 50억년 동안 단 하루도 똑같은 날씨였던 적이 없다."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온도변화, 파도 높이, 바람 세기, 물의 흐름의 변화. 단 하루도 지구는 변하지 않은 적이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말처럼 지구는 단 하루도 변화를 멈춘적이 없는 것이다. 이 지구에 하나의 먼지 같은 존재인 나는 이 명백한 진리에 역행하며 점점 내 존재가 멈추길 기대한다. 구본형 작가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이런 내 생각을 노회와 기득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멈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시작을 위한 멈춤과 끝 을 위한 멈춤이다. 구본형 작가가 언급한 노회와 기득권은 끝을 위한 멈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끝을 위한 멈춤 (stop) 이 아닌 시작을 위한 멈춤(pause) 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정중동 (靜中動)


『채근담』에 나오는 이 말은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멈춰있는 것처럼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여 변화를 만들어 내는 상태, 바로 살아있는 지구와 같은 모습이다. 나는 독서를 정중동에 비유하고 싶다. 숨을 쉬고 책장을 넘기고 눈을 움직이고 있지만 멈춘 것처럼 고요하다. 솔바람 부는 호숫가 잔잔한 물결 같지만, 머릿속은 태풍이 휘몰아치며 얼어붙어 있던 고정관념의 틀이 깨지고 있는 순간을 맞이하 는 활동이 바로 독서다. 나는 독서를 통해서 내가 멈추고자 했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놓치고 싶지 않은 현재가 내게 유혹하는 편안함 (stability)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해 매일 공부하고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이 즐겁기보다는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고,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높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 상태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멈추고 싶었던 것이었다. 타인을 속일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은 속일 수 없기에 이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도 역시 책이었다.


... <독서의 맛,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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