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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06. 2020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빼앗아라

나에게 맞지않는 <손자병법>의 명언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빼앗아라

<손자병법> 중에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나랑 잘 맞지 않는 삶의 방법인데, <손자병법>에서는 결국 전쟁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내 것을 뺏긴다며 먼저 빼앗으라고 독촉한다.


어찌 보면 이런 내 삶의 자세가 다소 우유부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화도 내지 않고, 많은 것을 요구해도 시키면 꾸역꾸역 해낸다. 아내는 이런 내 모습에 답답하다고 화내고 성질을 부리라고 말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마냥 어색하다. 그래도 이런 내 성격 덕분에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많다고 느낀다. 호구로 보일지는 몰라도 일단 사회생활에서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협업이 잘된다고 할까?



“공격의 제1 요결은 ‘선제’, 한 박자라도 먼저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먼저 움직인다는 건 자칫 적에게 빈틈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일격은 적의 예상을 뛰어넘어 치명적인 곳을 공격해야 한다. 이것은 공격의 제3 요결 ‘의표’다.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지점을 찾아 바람처럼 쳐들어가야 한다.





선배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영특하고 날카로웠다. 나와는 제법 차이가 나는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업무에서 만날 때면 그는 항상 차가웠다. 칼에 밸 듯 날카롭게 몰아붙였고 집중을 주문했다. 회사라는 곳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서 다 그런 줄 알았다. 매번 힘들었지만 참았다. 참다 보니 또 할만했다.


후배 몇 명이 모여 그 선배에게 반기를 들었다. 단 1%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는, 단 1%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배의 태도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선배는 절대 자신을 꺾지 않고 그 후배들을 더욱 채근했다. 선배는 후배들의 가장 취약 포인트를 쥐고 흔들었다. 바로 근태였다. 출근 시간과 퇴근시간, 그리고 회의와 주말 근무로 후배들을 괴롭혔다.



후배들이 고개를 숙이는 듯했으나 결국 탈이 났다.



선배의 윗선 관리자에게 후배 여러 명이 부서를 옮겨달라며 면담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관리자는 처음에는 후배들을 달래며 업무평가가 좋은 선배를 인정하는 눈치였다. 회사는 결국 아웃풋이 좋은 사람이 인정을 받는 곳이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후배들은 더 윗선으로 문제점을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부서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인사부서에 관련 내용이 들어갔다.



그때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서의 관리자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인사에서 관리자의 역량 문제를 걸어버린 것이 태도 변화의 이유였다. 이제는 그 선배가 점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기 시작했다. 선배는 억울하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막내 사원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상황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결론은 차갑도록 일 잘하던 선배가 타부서로 옮겼다. 얼마 후 문제를 제기한 후배들도 모두 타 부서로 전배를 갔다. 그렇게 그때의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마지막 회식자리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서로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가 바뀌었다고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다 똑같아 보여 답답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몇 년 후...



회사 조직이 개편되면서 부서 간의 통폐합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부서를 떠났던 사람들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했다. 내 직급은 몇 단계가 올랐고, 어느덧 내가 관리자가 되어 앞서 말했던 그 선배들과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큰 회사지만 비슷한 일을 하던 관계로 가끔 회의나 회식자리에서 엇갈리듯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곧잘 적응하는 듯했지만, 또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는 듯했다.



대폭의 조직 개편으로 그 선배들이 다시 나와 같은 조직이 되었다. 그들은 삭이지 못한 서로의 앙금 때문에 각자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모났던 상처는 아물지 못했던 것이었다. 차가웠던 선배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가 이끄는 조직에서 후배들이 비슷하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또 맞섰던 선배 중 한 명도 계속 윗선과의 잦은 트러블로 부서 내에서 문제가 많았다.



나는 더 이상 수수방관할 입장이 아니었다. 함께 일을 하고 조율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나는 조직의 팀워크를 저해하는 이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한 분은 퇴사를 하겠다고 했고, 다른 한 분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곳으로 사업장을 옮기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결정이 되고 난 뒤 마지막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미운 정도 정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행히 마지막에는 앙금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오늘 글의 첫 부분에서 언급했지만 <손자병법>의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빼앗아라”라는 문장은 내 삶의 가치관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어찌 보면 아직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닥뜨리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읽었던 문장 중 납득이 되지 않았던 문장은 없었지만 (물론 이 문장도 납득이 된다.) 유독 이 문장과는 좀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싶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말도 안 되는 나만의 논리를 펴 본 것이다.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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