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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08. 2020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의 거리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을 읽다가



문제는 '다르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틀리다'라며 그를 매도하는 데 있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중에서





다르다 vs 틀리다


우리가 가장 많이 혼동하는 단어 중 하나가 “다르다”와 “틀리다”가 아닐까? 나 역시 이 두 단어를 수시로 혼동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마도 그때 그분이) 나에게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인지 못한 채 윽박질러댔던 순간에,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여 사용하면 이런 심각하게 기분을 언짢게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우쳤다. 그리고, 그때부터 “틀렸다.”라고 말하기 전에 “다른가?”라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자녀에게는 이 습관도 잊을 때가 잦다. 자꾸만 자녀에게는 기분이 태도가 된다. 미안.)


글을 쓰면서 사전을 찾아보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국어사전뿐만 아니라 영한사전과 한영사전, 또 영영 사전까지 찾아본다. 단어의 뜻이 명확히 내 이해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계속 다른 사전으로 그 의미를 파악해보려는 노력이다. 다르다 와 틀리다도 사전을 찾아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르다 : 서로 같지 않다. (not same, diffefent)
틀리다 : 맞지 않고 어긋나다. ‘다르다’의 비표준어 (do wrong, mistake, incorrect) 


사전을 읽어보면 명확하게 두 단어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문제는 “틀리다”라는 우리말 속에 “다르다”라는 표현이 숨어있어서 야기되는 문제인 것 같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말로 동등한 비교를 말한다. 하지만 “틀리다”는 의미 속에 평가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틀리다”는 “잘못됨”을 인식시키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다르다 와 틀리다를 혼용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경태 씨, 그 주장은 내 생각과 틀린데요.” -> “내 생각과 다른데요.”가 맞다. 틀리다를 사용하려면 “경태 씨, 그 주장은 틀렸어요.”가 맞다. 내 생각이라는 비교가 들어가게 되면 둘을 동등하게 비교하는 게 맞다. 



이 책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서 임경선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을 떠나 타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이 두 단어로 풀어냈다.



“문제는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틀리다’며 그를 매도하는 데 있었다.”


하루키의 문체나 스타일은 기존의 일본 문학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일본 문단에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곳이나 기존에 존재하는 세력들은 새롭게 들이미는 존재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답은 같다. “기존 세력으로 흡수되어 같음을 따르든지, 아니면 배척을 당하든지.” 하루키는 현대 일본 문학의 사조를 따르지 않았고, 그들이 처음 하루키를 조롱했을 때 굽히지 않고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일본 문학계에서 이단아처럼 취급된다. 그들은 같음을 요구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해놓고 그 선입견 속에서 하루키의 글을 그들의 잣대로 재어봤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그들과의 관계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일본을 떠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하루키가 거인이 된 이유는 자신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정하지 않고 창조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섬뜩하다. 만약 하루키가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을 했다면 지금 그가 쓴 작품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만약 하루키가 틀림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작가였다면 아마도 자신의 당시 결정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문제로 연결된다. 



“타인의 생각에 휘둘릴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문제에서 비롯하여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로 연결된다. 현재 최선이라고 생각한 결정이 미래의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아주 심리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나 역시 이 문제에 관해 명확한 결정을 할 수 없는데, 관련된 책들을 좀 더 찾아보면서 내 관점을 결정해 볼 생각이다. 


역시, 책은 자꾸 나에게 질문을 안겨준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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