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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09. 2020

세계를 형성하는 존재에 관한 생각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를 읽으며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이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보면 그리스인들의 삶의 습성과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외국을 오랜 기간 여행을 하거나, 타지에서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관점과 다른 새로운 관점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놀랄만한 지혜가 숨어있어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외국을 나가서 살자니 현재의 상황이 마뜩잖고, 그래서 ‘책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키의 글에서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고양이를 그저 단순히 거기에 존재하는, 거기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보지 않고 있다. 새나 꽃이나 풀이나 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또한 ‘세계’를 형성하는 한 존재인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그런 식으로 매우 너그럽게 성립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리스의 시골에 고양이가 많은 진짜 이유는 그들의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필리핀에서 4개월 정도 머무른 적이 있는데, 날씨 탓인지 그곳에는 도마뱀이 너무너무 많았다. 처음 나는 내방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작대기로 열심히 쫓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내방에서 도마뱀이 발견되어 나는 리조트 담당자에게 도마뱀이 올 수 없도록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얘기했다. 그때 그분들이 당황해하며 도마뱀이 나에게 무슨 문제를 일으켰냐는 식으로 물었다. 난 그냥 싫다고 했었다. 한참 지난 후 필리핀 현지 친구를 알게 되면서 이 문제를 언급했을 때, 그들은 도마뱀은 원래 이곳에 살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건물을 올리고 아스팔트를 깔면서 도마뱀의 서식지를 없앤 것이 잘못이고, 또한 도마뱀은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도시에서는 도마뱀이 귀하다. 깨끗한 환경이 아니면 살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주 가끔 도마뱀이 보이면 사람들이 잡으려고 손을 뻗친다. 그래서 도마뱀은 숨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도마뱀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그들은 도마뱀을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도마뱀 역시 자신의 삶에 당연히 존재하는 새나 나무 같은 존재 말이다. 그래서 도마뱀이 많은 것이고, 사람을 피하지 않는 것이었다. 






집에 강아지를 키운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귀여워서 지날 때마다 안아서 쓰다듬곤 했는데, 이제 강아지(이름이 김모카, 김젤리 다)가 그냥 가족이 되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불을 켜면 의례 자기들도 깼다며 몇 번 짖고, 방문을 열어주면 엄마 품에서 나와 집 전체를 한번 순찰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내 옆에서 오늘은 뭘 줄 건지? 멀뚱히 쳐다보고 있고, 간식하나 주면 물고 다시 엄마가 자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 이불 속에 들어가서 덜 깬 잠을 다시 청한다. TV를 보던 중에 강아지가 옆에 와서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잠잘 때 옆에 와서 치근대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닌 우리라는 울타리에 묶였다.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고양이에 관한 관점은 ‘존재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를 이방인으로 생각하는가? 인간이 아닌 동물도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가? 다시 말해 서로를 존재로 인식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라며 이 책은 내게 질문을 던져주었다. 



얼마 전 집에서 어슬렁거리는 강아지를 쳐다보다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모카랑 젤리는 얼마나 답답할까? 인간과 언어가 통하면 원하는 걸 다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내 말은 이랬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 못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쟤들은 모를 거야. 이해하는 그 순간 우리는 강아지를 통제하려고 할 테니까 말이야. 자식들처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강아지들이 약간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이 좀 딴 데로 샜지만... 뭐 ^^) 



-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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