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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09. 2020

가족을 통해 내가 얻는 것

어제 아내가 충격을 받았다. 아들 녀석 때문에...


작년 12월 말 초등학교 겨울 방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아이들이 집에 있다. 아이들의 방학은 엄마의 개학이라는 말처럼 주부인 아내에게는 모질게 긴 방학이 현재진행형이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식탁에 가득 놓여있는 온갖 먹거리 그리고 부스러기들. 강아지들과 아이들에 함께 뒹굴어 엉망진창인 마룻바닥. 아드님은 헤드폰을 끼고 총싸움에 여념이 없고, 따님은 친구와 화상 통화하며 유튜브를 보고 간식을 먹으며 강아지와 놀고 있다.(이걸 모두 한꺼번에)


온종일 애들 밥 먹이느라 지친 아내는 안방에 누워있고 그 주변으로 강아지들이 엄마를 괴롭히고 있다. 상상이 되려나?



코로나19로 길~~어진 방학 덕분에 아드님은 아직 중학생이 되지 못했다. 사춘기가 오려는 것인지 점점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고, 온종일 컴퓨터 오락에 정신이 팔려있다. 요즘은 친구들과 다자 간의 통화와 함께 총 쏘느라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 말로는 이런 백수가 없단다. 팬티 바람으로 하루 종일 오락하다 배고프면 나와서 뭐 먹을 것 없나 어슬렁거리는... 덕분에 광합성을 못해서 비타민D 결핍이 생겼다. (딸도 마찬가지로 결핍) 그래서 얼마 전에는 엉덩이에 비타민 주사도 맞았다.



문제의 발단은 코로나로 학원들이 죄다 문을 닫고 원격강의를 시작한 것에서 생겼다. 벌써 그렇게 수업을 진행한지 한 달이 넘었다. 선생님이 녹화해 둔 영상을 학생들이 시청하고 숙제를 한 뒤 한 달에 한 번 숙제검사를 받으러 가는 방식이었다. (결재일마다 숙제 검사를 하는 아름다운 시스템)


어제가 바로 그 숙제를 검사하는 날이었다.


아드님께서는 그동안 방송을 다 들었고, 숙제도 다했다고 엄마에게 얘기했었다. 그렇게 학원에 숙제검사를 받으러 갔지만, 실상 강의 틀어놓고 계속 딴짓을 했으며 숙제는 안 했고 선생님께는 숙제 노트를 안 들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지난달에는 선생님이 속아 넘어갔는데 두 달 연속 그러니 이상해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숙제장 놔두고 왔다고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녀석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바보 같은 녀석이 꼬리가 길면 밟히는 걸 모르나 보다.


엄마는 학원 선생님 앞에서 자존심을 실컷 구겼고, 아드님은 눈물로 만회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엄마의 흥분된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중간 어디즈음에서 나는 생각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시키는 부모의 문제인가? 녀석의 태도가 문제인가? 이 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내 산수 실력이 형편없어서 엄마가 특단의 조치로 <공문 수학> 선생님을 집으로 불렀다. 선생님이 오셔서 시험을 봤고 엄마랑 면담을 하셨는데, 내 산수 실력이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수준이라고 했다. 그때 엄마의 충격이 제법 되었으리라. 그리고 난 그때부터 <공문 수학>을 시작했다.



매일 덧셈 / 뺄셈/ 곱셈/ 나눗셈을 100문제씩 풀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한자리 사칙연산에서 두 자리와 한자리 두 자리와 두 자리... 이런 방식으로 다섯 페이지를 풀고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 사실 첫 평가가 조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너무 빨리 단계를 넘어갔으니...



그렇게 5년가량을 했는데 어느 날 나는 <공문 수학>을 끊게 되었다. 이유는 바로 내가 답안지를 보고 베껴 쓰다가 엄마에게 걸렸기 때문이다. 책상 서랍 속에 답안지를 넣어놓고 답안지를 보고 외워 쓰다 불쑥 방에 들어온 엄마에게 딱 걸린 그 순간.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내 아드님이 날 닮긴 닮았나 보다. 그날 엄마의 충격과 실망감은 아마도 어제 아내의 실망감과 비슷하겠지.



아내는 아들에게 모질게 말했고, 난 아내에게 인격을 무시하는 말투는 좋지 않다고 말했고, 우리 집 남자 둘 다 싸잡아 혼났고... ^^




매일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가 흘러간다.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자잘한 사건들을 만들고 그 사건들에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맞이한다. 내가 사는 세상,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행동의 전반에 가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위 사례처럼 내 가족이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 나는 내 기억 창고에 2020년 4월 5일 식목일이라는 날짜를 각인시킨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왜냐? 우리의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는다.


가족은 이렇게 내게 또 한 번의 웃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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