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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10. 2020

각 음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건...

김애란 <침이 고인다>를 읽으면서



이렇게도 유명한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이제 겨우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은 처음이다. 그녀의 책은 여러 군데를 통해서 많은 추천을 받았다.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 달려라 아비> <비행운> 그리고 이 책 <침이 고인다>까지. 현재 내 서재에는 지금 읽고 있는 <침이 고인다>를 포함해 총 3권이 나란히 놓여있다. 꽤 오래 서재에 칸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임경선 작가의 책은 손이 잘 가더니... 더는 늦추기 싫었고, 지난주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2007년 작품이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2002년에 등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나름 초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김애란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바로 이 사진 때문이다. 내 고향 부산의 yes24 중고서점 입구에 있는 이 시대 작가의 사진인데 유시민 씨 다음에 김애란 씨가 있다. 나도 언젠가 내 글로 여기에 내 사진을 걸어보리라는 부푼 기대감으로 살고 있는 중인데 (꿈은 자유다. 그렇지 않은가?) 이 중 가장 젊은 작가가 바로 김애란이었다. (1980년생) 이 젊은 작가가 채널 예스에서 뽑은 우리나라의 12명의 작가에 뽑힐 정도면 대체 어떤 글을 쓰는 걸까? 생각하며 중고서점에서 그녀의 책을 샀었다.




암튼...


<침이 고인다>는 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두 편을 읽었다. 내가 발췌한 문장은 첫 번째 단편 <도도한 생활>에 나오는 문장인데, 여러분도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어느 정도의 관찰력과 필력을 가지고 있는지와 문장 몇 줄로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만큼 단숨에 나를 푹 빠지게(진짜 Deep Dive... 이런 표현은 영어가 더 적절한 듯) 만들었다.



<도도한 생활>은 어느 시골의 만둣집 가족 이야기인데, 피아노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서른 페이지 정도 분량의 짧은 단편인데 그 속에는 빈곤, 아픔, 슬픔, 가족, 서러움, 삭막함... 말할 수 없는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잠시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해 보겠다.


엄마는 내게 피아노를 사줬다. 읍내서부터 먼짓길을 달려온 파란 트럭이 집 앞에 섰을 때, 엄마가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세탁기도 냉장도 고 아닌 피아노라니. 어쩐지 우리 삶의 질이 한 뼘쯤 세련되진 것 같았다. 피아노는 노릇한 원목으로 돼, 학원에 있는 어떤 것보다 좋아 보였다. 원목 위에 양각된 우아한 넝쿨무늬, 은은한 광택의 금속 페달, 건반 위에 깔린 레드 카펫은 또 얼마나 선정적인 빛깔이던지. 그것은 우리 집에 있는 가재들과 때깔부터 달랐다. 다만 좀 멋쩍은 것은 피아노가 가정집 ‘거실’이 아닌, 만두 가게 안에 놓인다는 사실이었다.


어떤가? 작가의 날카롭고도 정확한 관찰력에서 비롯되는 문장의 울림이 느껴지는가?



난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유치원 다닐 때 우리 집에 피아노 들여놓던 날을 떠올렸다. 누나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선물로 피아노를 사주셨다. 적갈색의 삼익 피아노였는데 위문장이 저절로 공감될 정도로 당시 피아노는 비싸고도 비싼 물건이었다. 자녀의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고 전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으로)에 수백만 원을 투자하는 과감성은 부모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결단일 것이다. 또, 소설에도 나오지만 집에 들여놓는 순간 피아노는 전공자가 집에 거주하지 않는다면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간다. 누나가 9살이었을 때 샀던 그 피아노는 내 딸이 12살이 되던 작년에 우리 집에서 집 앞의 성당으로 떠났다. 방이 좁다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아내가 수소문을 해 집 앞에 새로 지은 성당에 기부하게 된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 집 피아노의 추억은 끝났다.




또, 누나가 결혼을 하고 얼마되지 않아 누나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에는 정말 비싸보이고도 장엄한 그랜드 피아노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형의 누나가 피아노 연주가이자 교수님이셔서 집에 그랜드 피아노가 몇 대 있는데, 그 중 한 대가 작은 방을 채우고 있었다. 피아노 때문에 아파트의 1층을 얻어야 했고, 피아노를 위한 습도 조절기와 에어컨이 구비된 방이었다. 쳐다만 봐도 고급 져 보이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피아노 뚜껑을 열었을 때 예전에 삼익이라고 쓰여있던 그 자리에 steinway & sons라는 듣보잡 글자가 쓰여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이 피아노가 억대라는 것을.



사실 추억 소환 보다 아래 손으로 필기했던 문장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이 책에 더 애착이 간다. 애란애착...ㅎㅎㅎ



각 음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건 여러 개의 시간이 만나 벌어지는 어떤 일인지도 몰랐다.

김애란 <침이 고인다> 중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 각 음이 붙었다 떨어지고 중첩되고 끊어지고 늘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음의 연속을 여러 개의 시간이 만나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표현해놓은 그녀의 표현에 감탄했다.


말이 길었지만, 김애란을 느껴보고 싶다면 <침이 고인다>를 읽어보기 바란다. 난 이 책이 끝나면 바로 <바깥은 여름>으로 내달릴 생각이다.


-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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