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소유가 되나요?
현재 가진 것 중에서 무엇이 없을 때 가장 불편할까요?
오늘의 질문지를 받았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소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내를 생각했다.
나는 결혼했다. 그래서 아내가 생겼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시청에 들러 혼인 신고를 했다. 아내와 나, 우리 둘의 계약은 체결되었다.
연애는 길었다. 알고 지낸 지는 40년이 넘지만 남녀 사이로 만나 “오늘부터 1일” 비슷하게 시작한 것은 2001년 1월 즈음으로 기억된다.
매년 그랬듯 학창시절 방학이면 부산에 내려와 집에 머물며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이리저리 빈둥거렸다. 당시 아내는 내 초등학교 동창으로 그녀가 졸업한 부산대학교 근처에서 내 친구들과 함께 자주 만나 차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친한 친구로 지내던 사이였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관과 연애관에 대해 자주 묻고 대답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좋아했던 여인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나에게 여자들의 마음을 모른다며 이런저런 코칭을 해주곤 했다. 그러다 덜컥 둘이 사귀게 된 것이다.
아내는 내가 처음으로 꼭 안아본 여자였다. 손을 잡아본 여인은 있었지만 품에 안아본 여인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가끔 그녀를 만났다. 또 연애를 시작하고 1년이 되는 시점에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에게 미국에 가겠다고 통보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 충격의 앙금이 지금도 남아있을 만큼 그녀는 당시 놀랬고 당황했었다. 그때 나는 철저히 나 중심이었고(물론 대부분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그녀가 기다려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기다렸고, 귀국한 뒤 정말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소유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돈으로 사람을 살 수는 없어도 마음을 얻으면 내 소유물이 될 거라 기대했다.
“넌 내 거야!"라는 말처럼 당연히 연애를 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교감이 생기면 소유를 주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헤어짐을 잃어버린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이별은 연인을 소유했다 분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와의 연애의 끝이 결혼이었고, 나는 주민등록 등본의 내 이름 아랫줄에 그녀를 배우자로 등록했다. 나는 서류상 관계가 형성되었기에 그녀에 대한 내 100% 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100% 착각이었다.
결혼은 서로의 지분을 조금씩 나눠같는 것이었다. 남편이라는 책임감 주변에 아내를 위한 사랑이 존재하고, 아내라는 의무감 속에는 남편을 위한 헌신이 존재했다. 우리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각자의 경계를 살짝살짝 넘나들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 선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원래 싸움이 되지 않는 놈이라 아내는 싱겁게 다시 자신의 선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서서히 부부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서로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이제는 여보라고 부른다. 여보가 편하다. 여보라는 말이 좀 더 따뜻하다.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여전히 내 이름이 불리는 삶을 살아가지만, 주부가 된 아내는 점점 자신의 이름이 불릴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내가 더 자주 불러준다. 한 번은 여보로 한 번은 이름 뒤에 여사님을 붙인다.
이제 아내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사회적 관계를 조금씩 형성해가고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잊었던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삶에 있어서 참 중요한 문제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관계 속에 자신을 자리매김해야 한다. 존재의 의미를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내는 항상 내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리고 나도 항상 아내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아마도 우리의 결혼계약 속에는 요구권이 있나보다.
늦은 밤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아내가 커피를 내려줬으면 좋겠고, 아내는 자신이 처리하기 껄끄러운 귀찮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개입해서 처리해 주길 원한다.
서로 상대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면서 우리는 부부임을 확인한다.
나는 아내가 영원히 여자이길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빛이 나는 여자이길 바란다.
물론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서서히 시들겠지만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아저씨가 아닌 남자가 되어야겠지만...
그렇게 천천히 익어가는 부부가 되어가길 바란다.
- 작가 김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