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통해 내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삶을 위하여...
본질 (本質, The Essence, Essentials)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실존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어떤 존재에 관해 '그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성질
돌이켜보면 참 쉬운 질문이었는데, 난 이 질문 하나를 가지고 1년을 넘게 고민했었다. 운동만 아니라면 뭐든 보통 이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똑똑하다"라는 약간의 허세 섞인 자만심도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고유명사로 정의되는 "어떤 것 (타인에게 보여줄 만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나는 과거의 경험을 되짚어가면서 그럴듯한 단어를 열심히 수집해 나갔다.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나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었다. 뭐든 보통 이상은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던 것이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을 찾는 순간이었지만 난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해본 뒤부터 나는 내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남에게 번듯하게 자랑할 수 있는 내 무기 말이다.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나는 시작을 항상 거창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게 분명 장점은 있지만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에는 시간과 돈낭비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다 잘하려고 시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단 하나의 취미만 있어도 즐겁다고 했는데, 나는 네댓 개의 취미로도 부족해 또 다른 무언가를 기웃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즈음에 나는 이 자기계발의 전체 과정을 지내는 동안 지속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독서와 글쓰기였다. 이건 마치 내 몸의 오른팔과 왼팔 같이 내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항상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었다. 이건 내가 잘하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책 많이 읽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독서는 그냥 습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지 내 무기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책을 읽는 것과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내 무기로 해보기로 결정했다. 예상 못 했지만 의외로 강한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에서 -
내 생각이 / 내 의지가 읽고 쓰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자 이 능력은 내게 점점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해볼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물어다 주었고, 나를 알리기에 좋은 소재가 되어주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읽고 쓰는 것과 관련있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 같이 있을 때도 나는 계속 읽고 썼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가지에 집중해 내가 든 칼을 열심히 벼려야하는데, 내게 주어진 과업들은 "내 칼이 아닌 남의 칼을 갈아주고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바뀌었다. 내 모든 시간이 내 칼을 벼리는데 사용 중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열정이 일어났고 똑같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그 단어에 다가가고 있었고, 그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고자 애쓰고 있었다.
샐러리맨이었던, 아니 지금도 샐러리맨인 나는 오래도록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직장(place)은 있었지만 직업(work)은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 하나를 가입해도 부가 정보란에 직업을 쓰게 되어있는데, 나는 직업란에 "회사원 / 연구원"이라는 것을 체크하며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삼성에서 근무하는"이라는 수식어 없이 "김경태"라는 내 이름을 통해 나를 각인시키고 싶었다. 또한 이름 뒤에 "~~을 합니다"라는 내 업태를 통해 나를 설명해 내고 싶었다.
<작가>라는 직업을 발견한 것은 우연 같은 필연이다. 이 단어를 찾고 보니 나는 내 모든 시간을 이 단어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다. 난 여러 갈래의 길을 빙빙 돌았지만 적어도 뒤돌아가지 않았다. 내 모든 순간은 내가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데 사용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만족감이 아주 높은 고 퀄러티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참 좋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정의된 단어를 통해 내 삶의 본질에 많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은 많고, 배워보고 싶은 것도 많고, 더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삶의 끝, 그 정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아버지 어머니가 항상 바라왔고 지금 누리고 있는 현재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큰 것을 꿈꾸되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해하며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 작가 김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