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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Nov 17. 2015

그녀들과의 추억


혹시 오키나와 여행 얘기를   해도 될까요? 사실 그냥  하고 가기에는 조금 아까운 얘기가 있어서요. 나름 재미있었던 추억이기도 해서... 그럼 들어주시겠어요?


더운 날씨에 제법 걸어서인지, 배가 갑자기 고파지더군요. 그래서 어느 골목에 있던 편안한 느낌의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메뉴들이 전부 일본어라 옆 테이블의 여학생이 먹고 있던 것과 같은 메뉴로 주문했지요. 여학생이 그릇을 깨끗이 비운 직후라 무슨 메뉴인지 모르고 시킨 거였는데, 나온 것을 보니 채소볶음이더군요. 조금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인지 잘 먹었지요. 한창 먹고 있는데, 여러 명의 손님이 식당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섰습니다.


은행원 같은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었어요. 모두 4명이었는데, 20 초중반의 일본인으로 보였어요. 마침  점심시간쯤이었기에 '. 근처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왔구나. 누군가에겐 일상이 계속되는 중이겠지.' 하며  흐뭇해했지요.


그런데 웬걸  그분들이 저의 바로 옆자리에 앉자마자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마구 뽑아내지 않겠습니까. 저도 경상도 출신이라 네이티브란 걸 바로 알 수 있었지요.


"언니야. 이 집 마싰나?

"니. 안와밨나?"

"니 그때 와봐쓸낀데."

"아이다. 안 와봤다. 와밨으면 와봤다 카지."

"아. 빼고파라. 빨리 나와야 될낀데."

"점뻔엔 거의 45분 다 돼가 나와가꼬. 허급지급 묵꼬가짜나."

"내가 카레 시키지 말라 안캤나."


전 쑥스러워서 한국인이라며 인사를 건넬 수는 없었습니다. 그게 외국에선 오히려 한국인에게 아는 척하기가 더 어렵잖아요. 사실 한국인들은 서로 피하기도 하지요. 한국인들이 없는 관광지를 찾아가기도 하고 말이지요. 한국인에게 여행이란 한국인을 피하기 위한 여정인 걸까요.


아무튼, 전 아는 척하는 타이밍을 잃고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은행에서 일하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대화를 듣다 보니 유통이나 무역 쪽에서 일하는 분들 같더군요.


"알바 걔 와그리 말을 안듣노?"

"맞제. 내가 안 카드나."

"내가 아침부터 매대에 물건 채워노라꼬 그리 말했는데 문서 작업한다꼬 잠깐만요 잠깐마요 카믄서 안하자나. 일도 순서에 마께 해야지. 유도리가 없는긴지 고집이 씬건지."

"맞다. 지 고집 이뜨라."


'뒷담화 시간이구나?'하며 전 속으로 재밌어하며  그분들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어찌나 호탕하고 걸쭉하게 얘기를 나누시던지  흥미진진했습니다.


"근데 량량(이런 느낌의 중국 이름이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은 계장님이랑 마이 치네져떼?"

"따로 저녁 또 머꼬 캐따카드라. 술도 한잔하고"

"맞나. 그리 맘에 안드러하시드만."

"근데 량량 걔는 사복이 낫뜨라."

"마쩨. 유니폼은 윽수로 안어울리자나. 희한하게 사복입으면 또 걔안테?"

"응. 쎄련대뜨라."


한편, 전 과연 이분들이 정말로 내가 한국인인지 모르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아니면 워낙 한국인 관광객이 많으니까, 있어도 그러려니 하는 걸까 했지요. 하지만 그녀들의 큰 목소리와 거리낌 없는 대화를 봐선 또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다음 대화를 듣고 '그래. 내가 한국인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근데. 여는 쌩필품가튼게 마나서 조타."

"마따. 싸게 살 수도 이꼬."

"쌩리대가 업써서 쪼매 아십찌만."

"와?! 기저귀 이짜나."

"언니는?! 내 궁딩이를 우습께보나?! 기저귀로 대겠나?!"

"걷는 아이용으로 하면 안되나?! 가능하겠는데?!"


 순간 웃음이 나올  뻔해서 고개를 돌려야 했지요.


결국,   그분들이 나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했습니다. 어쨌든 혼자 먹는 심심한 식사시간을 아주 유쾌한 시간으로 바꿔주고, 다시 분주히 일터로 복귀하는 그녀들 감사했지요.


근데 말이지요. 정말 걷는 아이 용도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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