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고 싶습니다. 멋진 겨울 코트를요. 하지만 사긴 좀 그렇습니다. 저는 마흔 살이고, 애 아빠거든요. 딸은 지금 7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예쁘게 잘 크고 있어요. 돈 들어갈 일이 많습니다. 생활비도 빠듯하죠. 이런 상황에서 제 옷을 산다는 건 참 염치없는 일이죠.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산 좋은 겨울 코트도 두 개나 있고, 패딩이나 재킷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없이 자꾸만 새 옷을 사고 싶어집니다. 수시로 인터넷에서 예쁜 옷을 훔쳐보곤 합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아빠로서 가정과 아이를 위해 나 자신은 알몸으로 다녀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늙은 아저씨가 되어서는 번지르르한 새 옷을 입어 봐야, 뭐 하겠습니까.
가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헌신적인 가장이 되고 싶은데,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들여놓은 쇼핑 습관이 잘 떨쳐지지 않네요. 자꾸만 옷이며 신발이며, 모자며 이것저것 사고 싶어요. 어쩌면 쇼핑 자체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는 거겠죠. 그 물건이 꼭 필요하거나 갖고 싶어서라기 보다는요.
잠깐만요. 자신에게 쓰는 돈을 아끼면서 추레하게 다니는 아빠와 스스로를 잘 꾸미고 다니는 아빠 중에 어떤 아빠가 더 나을까요?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필요 없다고요? 물론, 가정도 잘 꾸리면서 자기도 멋지게 다니는 아빠도 있겠죠. 그래도 괜히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네네. 쓸데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넘어갈게요.
최근에는 싸고 괜찮은 물건을 건져보겠다고, 인터넷에서 빈티지 제품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실패도 좀 했지요. 그냥 빈티 나는 옷을 사는 바람에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노스페이스 패딩인데, 솜이 많이 빠지고 낡아서 초라해 보이긴 하더군요. 아내가 몰래 버릴 거라고 했지만, 제가 아까워서 입을 거라 우겼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점점 입기 싫어지긴 합니다. 버려야 할까 봐요.
빈티지가 아니면서 가장 저렴한 것을 찾아보려 '알리 익스프레스'도 한참 구경해 봤지만, 도저히 주문까지는 못 해봤습니다. 혹시 괜찮은 물건을 건지신 분이 있으신가요?
살 거면 돈을 더 주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는 게 오히려 돈을 아끼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비싼 것을 사기에는 죄책감이 느껴지고, 눈치도 보이는 걸요.
네네. 그냥 아무것도 안 사고 참는 게 답이겠죠. 어느새 이 겨울도 지나갈 것이고, 지금 있는 옷들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겠죠. 압니다. 안다고요! 그래도 새 옷을 사고 싶다고요!
안 되겠습니다. 인터넷 쇼핑창은 끄고, 딸아이 사진을 더 들여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