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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사건의 전말

by 유후루

나와 아내가 사는 아파트는 오래되다 보니, 지하 주차장이 없고 야외주차장만 있다. 주차 공간도 부족한데 차들도 많다 보니 주차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차를 가지고 외출했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은 피해야 한다.


아무튼 아파트 주차장에 있던 우리 차의 뒤쪽 범퍼가 어느 날 긁혀있었다. 누군가 긁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속상했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중하게 타던 차인데. 긁었다는 연락도 없이 도망가버린 인간이 미웠다.


주차해놓을 땐,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어서 차의 블랙박스를 꺼둔다.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증거를 찾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차가 주차된 곳 주변에는 CCTV 카메라들이 있었다. 우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파트 단지의 모든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를 매일 타지 않다 보니, 긁힌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사건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 5일간의 영상 기록을 모두 봐야 했다. 하지만 매일 24시간이 기록된 CCTV 영상을 살펴보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빠르게 재생시켜가며 확인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리실에서 몇 시간을 보냈지만, 수확이 없었다. 너무 지쳐서 그날은 포기하고 집에 돌아갔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괜히 에너지만 쏟고 허탕 칠 바엔 마음을 접는 게 나을 수 있었다. 범퍼가 좀 긁혔지만 운전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자꾸 신경이 쓰이면 귀여운 스티커를 사서 붙여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다음 날, 조금만 더 애써보고 안되면 말자는 다짐과 함께 우리는 다시 관리실을 찾아갔다. CCTV 영상들을 눈이 빠지라 살펴보았다. 배도 고프고 지쳐갈 때쯤에 아내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뭔가를 찾은 것이었다. 과연 어떤 차 하나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던 그 차는 우리 차에 부딪힌 후에 잠시 주춤하더니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CCTV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어두운 밤이라 차량번호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명확한 시점과 증거를 찾았으니, 신고를 위해 우린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남은 일은 경찰들이 알아서 척척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경찰은 이런 일에 전문가이니 차량번호도 금방 알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담당자는 사건의 더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그 가해 차량의 번호까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CCTV로 번호판 확인까지 해서, 자기한테 연락하면 바로 현장으로 출동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수사하고 범인까지 찾아내면 경찰은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일단 받아들였다. 그냥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CCTV 탐색을 재개했다. 가해 차량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 차량의 그날 동선을 파악하여, 다른 CCTV 카메라에 찍힌 모습들을 찾았다. 그 차가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동안, 여러 카메라에 찍히긴 했는데, 번호판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둡기도 하고, 빛 반사 때문에 숫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아내의 예리한 눈이 또 한 번 실력을 발휘했다. 그 차가 커브를 도는 순간 찍힌 영상에서 번호판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손뼉을 치며, 그 경찰에게 연락했다.


그는 바로 달려오긴 했고, 우리가 찾은 CCTV 증거들을 보고서는 이제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할 거라며 갑자기 든든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차량번호를 통해 운전자의 연락처를 확보한 그는 즉각 연락을 취했다. 그 운전자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싱겁게 바로 자백했고 사건은 그렇게 해결되었다. 그 경찰은 전화로 그자에게 아주 매섭게 쏘아붙였더니, 그가 바로 이실직고했다며 자랑하였다. 수사는 나와 아내가 다 했지만 말이다.


결국, 그 도망간 운전자의 책임으로 모두 보험 처리되었고, 우리의 아반떼는 깨끗하게 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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