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후루 Jan 14. 2016

날 아련하게 하는 것들


저를 아련하게 한다는 말이 문법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련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똑똑히 분간하기 힘들게 어렴풋하다'로 나오더군요.


아마 풍경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말인가 봅니다. '아련하게 보이는 바다', '아련한 추억'처럼요.


하지만 전 '아련하다'를 저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로 쓰고 싶습니다. 다른 말을 고민해보았지만 제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 만큼 마땅한 것이 없네요. 가슴이 정말 아련해지니까요.


제 마음대로 쓰겠습니다. 비난하진 말아 주세요.



저를 아련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공책 표지의 풍경 사진입니다. 간혹 공책 중에 어딘지는 알 수 없는 한가로운 마을의 풍경이 표지에 장식되어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 유럽의 시골일까 하고 추측해볼 뿐입니다. 색채도 살짝 바래서 흐리멍덩합니다.


주로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에는 쭉 뻗은 비포장 길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이어진 저 먼 곳에 세모 지붕의 집이 정겨운 느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풍경 속에는 사람도 동물도 보이지 않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배경으로 조금은 오글거리게 하는 감성적인 문구가 짧게 적혀있지요.


초등학생 시절에 그 공책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은 뭔가 아련해지곤 했습니다.


저는 어느새 풍경 속에 쏙하고 들어가서 홀로 길을 걷습니다. 그 길 끝에 있는 집에는 다정한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길가의 벌레도 구경하고 돌멩이도 발로 차며 이리저리 한 눈을 팔면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제가 늦더라도 괜찮다는 걸 아니까요.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가 다시 공책을 또렷하게 응시하면 전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그 장소를 떠올리며 까마득하게 아련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큰 나무의 꼭대기에 매달린 잎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나무의 잎은 아닙니다.


버스에 탄 채로 고가도로를 지날 때면, 고가 아래의 보도에서부터 고가 옆까지 솟아있는 가로수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럼 그 큰 나무도 버스 창가에 앉은 저의 시선보다 아래에 놓이게 되는데, 그 순간 그 나무 꼭대기에서 흔들거리는 잎을 보면 전 어쩔 수 없이 아련해집니다.


그 잎들은 지상에서 올려다볼 때보다는 저와 가까이 있지만, 여전히 제 손에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전 생각합니다. 저 잎을 만져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겠지 하고. 그러고 나면 전 더 아련해지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지루하셔도 봐주세요.


그건 바로 화장실에서 들리는 밤의 버스 소리입니다.


요즘에 버스는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운행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통 집에서 쉬고 있는 밤에도 버스는 열심히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언덕배기 동네에도 늦은 시간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습니다.


10시나 11시가 넘은 깊은 밤, 집에 있던 제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때에 맞춰 화장실의 작은 창문으로 그 버스의 낡은 브레이크 소리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전 아련해지고 맙니다.


화장실 슬리퍼에 대충 발을 끼워 넣던 순간, 그 소리가 들리면 전 '아'하며 아련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텅 벼있거나 한두 명만 맨 끝에서 두 번째 좌석에 앉아있을 버스의 풍경을요.




이렇게 저를 아련하게 하는 것들은 굳이 떠올려 보면 더 있긴 하지만 이 정도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한 교훈이나 깨달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뭐 그렇다는 것이지요.


혹시 독자님은 어떠신지요. 마음을 아련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침착함과 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