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후루 Oct 19. 2016

침착함과 게임



혹시 평소에 침착함을 잘 유지하시는지요? 만약 그러시다면 참 부럽습니다. 저에겐 꽤 어려운 일이거든요.


쉽게 동요하고 흥분하는 성격이라 금세 피가 얼굴에 모여들고, 눈동자가 흔들리며 목소리가 갈라지고 맙니다.


특히, 회사에서 회의할 때나 누군가와 논쟁을 할 때 이럴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생각이 좁아지고 논리도 약해집니다. 그래서 반박을 위한 반박, 말을 위한 말을 하면서 길을 잃어버리곤 하지요. 그리고는 나중에 '아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나도 참 발전이 없구나!' 합니다.


그래서 요즘엔 마음이 동요되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속으로 '침착하고, 넓게 보자'라고 되새기는 걸 습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습관을 들이게 된 건 게임을 하면서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콘솔 게임기로 축구 게임을 하는 것인데,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조금만 방심해도 자제력을 잃게 됩니다.


잘하다가도 상대 팀에게 골을 먹게 되면 금세 동요하여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혈압이 상승하며 초조해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손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심히 해보아도, 시야는 좁아지고, 실수도 잦아지면서 점점 더 경기가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어느 날부턴가 게임을 하며 '침착하고, 넓게 보자'를 계속 되뇌기 시작했습니다. 행여 골을 먹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침착하고, 넓게 보자'하는 것입니다. 간혹 작게 소리 내어 말해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요즘 들어 승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일상생활 전반에 접목해 보기로 한 것이지요.


게임이 저의 마음 수련에 큰 공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게임 이야기를 하니까 지난 일본 여행 중에 본 어떤 샐러리맨이 생각이 나네요.


열차를 타고 교토에서 도쿄로 가는 중이었는데, 저와 여자 친구 건너편 자리에 샐러리맨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오십대의 노련해 보이는 샐러리맨들이었지요. (사실, 그분들이 샐러리맨들이라는 건 오로지 저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오니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열차가 한 참 달리고 있는데, 제 옆의 여자 친구가 제 어깨를 살며시 두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저쪽을 보라기에 봤더니 샐러리맨 중 한 분이 쓰고 있던 안경을 머리까지 올리고, 휴대용 게임기를 코앞에서 뚫어지라 보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중년의 회사원들이 많이 있지만, 휴대용 게임기를 들고 다니며 즐기는 분은 잘 없지 않습니까. 있더라도 그렇게 열정적인 자세로 게임을 하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꽤 신선해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도쿄까지 가는 몇 시간 동안 그분은 잠시도 쉬지 않고 오직 게임만 했습니다. 전 속으로 일 때문에 도쿄에 가는 길로 보이는데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분은 거침없었습니다.


조금 멋져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게임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할 때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낍니다. 특히, 너무 오래 하고 나면 시간을 낭비하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생산적인 것에 노력과 시간을 쏟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마 제가 그 샐러리맨 아저씨였다면 왠지 신문도 좀 봐야 할 것 같고, 일과 관련된 메일도 좀 확인해야 할 것 같고, 그게 아니면 잠이라도 청해 체력이라도 충전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게임만을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말쑥한 양복을 입고 무테안경을 두피까지 끌어올리고 게임기에 빨려들 것처럼 온 열정을 쏟고 있는 그 샐러리맨 아저씨의 모습은 저에게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게임 해. 괜찮아."라고.


그래서 요즘엔 죄책감 없이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원래 침착함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게임 이야기에 그만 흥분해버렸네요.


결국, 또 이렇게 침착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이트 러시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