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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Apr 05. 2016

짝꿍 K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전 어느새 중학생 3학년이 되었답니다. 성적도 많이 올랐지만 그리 자랑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직 멀었지요.


키가 갑자기 훌쩍 자랐습니다. 성장통 때문에 잠잘 때마다 다리가 저려서 고생했는데, 그 덕분에 이젠 교실에서 거의 끝줄에 앉는답니다.



사실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게 된 건 저에게 큰 고민이 생겨서입니다. 물론 선생님의 안부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저의 하소연이 앞선 편지라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이해해주시겠지요.




제 짝꿍은 다리가 불편합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그렇다고 해요. 혼자서 어느 정도 걸을 수는 있지만 오래 걷기는 힘들어서 다른 사람이 부축해야 해요. 그래서 등하굣길은 언제나 어머니가 함께합니다.


어쨌든 그 친구가 제 짝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K라고 부를게요.


제가 K에게 많은 도움을 줘야 하는 건 아닙니다. 간혹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거나, 잠시 부축을 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별일은 아니에요.


친하게 지냈습니다. 성격이 밝고 장난기도 많은 친구입니다.


선생님에겐 솔직하게 말할게요. 사실 처음부터 K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머리의 비듬이나 입 냄새가 싫었거든요. 몸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런 게 싫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친구니 싫어해선 안 된다,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K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K가 성격도 나쁘고, M이란 친구에게 못되게 군다는 것이었습니다.


M은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정말 착한 친구입니다. 예전부터 K와 친하게 지내며 여러모로 K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말로는 K가 M을 마치 종 부리듯 부려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그런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K가 자신의 바로 앞자리인 M에게 장난을 많이 치기는 했거든요. 물론, M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저에게 그런 K가 얄밉게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 아이들의 대부분이 K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의 짝이었기에 전 K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니, 그런 척을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K를 완전히 미워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때였습니다.


유적지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이 멀어서, M이 K의 짐을 계속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짐도 있어서 M은 힘겨워했지요.


그런데 K는 그런 M에게 빨리 걷지 않는다며 오히려 나무라지 않겠습니까. 너무 괘씸했습니다. K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 이후로 전 K와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말도 걸지 않고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습니다. K의 농담이나 장난에 절대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넘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장난을 자꾸 걸어서 짜증이 난 K가 급하게 일어서려다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맘대로 안 되다 보니, K는 어쩔 줄을 몰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소름 끼치게도 그 모습을 보고 전 웃고 말았습니다. 네 정말입니다. 이런 저를 비난하시고 다신 연락하지 않으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 입에선 분명히 웃음이 새어 나왔으니까요.


주변의 다른 친구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몇 명은 정신을 차리고 K를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K의 얼굴에 수치심과 분노가 드리워졌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전 K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웃었다는 사실을 왠지 K가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K도 조금 변했습니다. 말수가 줄었고, 표정도 어두워졌습니다. 더는 M에게 장난을 치지도 않습니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K가 M에게 못되게 군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친구 사이에 있기 마련인 가벼운 장난들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걸까요.


전 K가 몸이 건강한 다른 친구들처럼 장난을 치고 싸우기도 하고 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일까요. K는 착해야만 한다고, 몸에 장애가 있으면 오로지 착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이렇게 적어보니 선명해지네요. 네. 맞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전 참으로 편견 덩어리의 못난 아이입니다. 선생님도 완전히 질려 버리실 테지요. 불쾌감에 이 편지를 찢어버리셔도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하염없는 너그러움으로 저를 이해해 주신다면 크게 꾸짖어 주세요. 행여나 이 편지에도 혐오스럽게 남아있을 저의 위선이 보이신다면 낱낱이 파헤쳐주세요.


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참담한 심정으로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목련이 성급하게 핀 어느 봄날에

Y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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