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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18. 2016

택배 상자의 여정

 

주위가 소란스러워 눈을 뜨자,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이봐. 녹색 줄넘기는 이 상자에 담아.”

“이건 어디로 보내는 건지 알아?"

“여기 주소가 잘 못 된 것 같은데?!”

“자자, 빨리빨리 움직여요. 12시 전에는 모두 발송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아주 바빠 보였어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물건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한쪽 벽에 ‘헬스 마켓’이란 큰 글자가 보였어요. 그곳은 인터넷으로 아령, 역기, 줄넘기, 공 같은 다양한 운동 기구를 파는 회사였어요. 그때, 어떤 아저씨가 저에게 무언가를 담기 시작했어요.


‘아니! 이건 뭐지? 너무 무거워!’

저는 깜짝 놀랐어요.


“이 아령은 어디로 가는 거지?”

“서울 서대문구 쪽이야.”

“오케이! 포장 완료!”


그 무거운 물건은 아령이라는 운동 기구였어요. 저는 테이프로 꼼꼼히 포장되고, 머리에는 주소가 적힌 종이가 붙여졌어요. 저는 그때 서야 저의 모습이 주사위처럼 네모 상자 모양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니!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공장에서 나올 때만 해도 평평한 모양이었는데.’

공장에서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었나 봐요.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오더니 저를 들고 가기 시작했어요.

“앗! 너무 흔들지는 마요. 제 엉덩이가 터져서 아령이 떨어질지도 몰라요!”

크게 외쳤지만, 그 사람에게 들릴 일은 없었어요.


저는 또다시 어떤 트럭에 실려 갔어요. 트럭에는 ‘금동 택배’라는 글자가 적혀있었어요. 트럭의 짐칸에는 다른 종이상자들로 가득했어요.


“안녕. 너 꽤 무거워 보이는구나? 뭐가 들었니? "

옆에 있던 종이상자가 물었어요.

“응. 아령이라는 운동 기구인데, 너무 무거워.”

제가 울상으로 대답하는 동시에 다른 종이상자들이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말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난 생수야. 생수 12개.”

“난 티셔츠라 천만다행이야.”

“난 튜브야. 벌써 여름인가 봐.”

“난 화장품이야. 유리병에 담겨 있어서, 깨질까 봐 걱정돼.”


종이상자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트럭 안은 ‘시끌벅적’했어요. 그런데 그때,

 

“흥! 애송이들. 소란 피우기는.”

제 맞은편에 있던 종이상자 하나가 끼어들었어요.


“모두 처음인가 본 데. 난 이번이 두 번째야.”

그러고 보니 그 종이상자는 조금 낡아 보였어요.


“교환해 달라고 해서 돌아왔다가 다시 가는 길이야. 아~ 정말, 피곤해.”

“무슨 물건인가요?” 호기심이 생겨 물어보았어요.

“청바지인데. 치수가 안 맞았나 봐. 이번엔 꼭 맞아야 할 텐데 말이야. 휴~. 나도 이제 은퇴해야지.”


‘종이상자로 사는 건 힘든 일이구나.’

전 조금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상자 중에 유독 하얀색인 상자가 눈에 띄었어요.


“저기 넌 색깔도 하얗고, 부드럽게 생겼구나? 뭘 가지고 가니?”

하지만 그 하얀 친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저 친구는 원래 말이 없어. 스티로폼 상자라는 녀석인데, 밀폐 포장이라 그런지 입이 무거워."

옆의 티셔츠 종이상자가 말했어요.

"아마 먼 바다에서 생선을 가지고 오는 길이라, 많이 피곤할 거야."

‘바다? 바다는 어떤 곳일까?’


그때 트럭이 멈춰 서더니 짐칸의 문이 열렸어요. 갑자기 들이닥친 햇빛에 눈이 부셨어요. 택배 기사님이 ‘어이쿠!’라는 소리와 함께 저를 집어 드셨어요. 저는 다른 친구들과 인사할 겨를도 없이 밖으로 나오게 됐어요.

  

제가 가야 하는 곳은 어떤 건물의 5층이었어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택배 기사님은 걸어서 올라가야 했어요.

“헉헉, 아이고, 허리야.”

택배 기사님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어요.

 

“딩동! 딩동!”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택배 기사님은 다시 어디엔가 전화를 거셨어요.

“네. 여보세요. 택밴데요. 집에 안 계시네요?”

“네네. 그럼 여기 문 앞에 놓고 갈게요. 네.”

통화가 끝나자 저를 문 앞에 내려놓으시고, 택배 기사님은 다시 힘차게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셨어요.

 

그 후로 몇 시간을 문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오호! 왔구나!” 누군가 저를 보고 반가워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를 꽤 기다렸나 봐요. 왠지 기분이 좋았어요.

 

“응차! 오! 무거워.” 그 사람은 저를 힘겹게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네모난 안경을 낀 남자였어요. 책가방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대학생 같았어요.

 

“자, 한 번 제대로 왔는지 볼까.”

그 학생은 저에게 붙어있는 테이프들을 신나게 뜯어내고, 아령을 꺼냈어요.

 

“오. 좋아. 잘 왔네. 생각보다 무겁네. 응?! 여기 뭐야. 약간 흠집이 있잖아. 에잇. 짜증 나. 할 수 없지. 교환하기는 귀찮으니까 그냥 쓰지 뭐.”

 

아령에 조금 문제가 있었나 봐요.

‘내가 좀 더 아령을 꼭 껴안고 있었어야 했는데.’


대학생은 혼자 사는 것 같았어요. 방이 하나였는데, 빨래가 널려 있어 습하고 더웠어요. 즉석식품을 많이 먹는지, 제 옆의 쓰레기통에는 라면 봉지와 삼각 김밥 봉지, 과자 봉지들로 가득했어요. 밤이 되자 그런 쓰레기들과 함께 저는 집 밖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그 대학생이 기다렸던 건 오직 아령뿐이었나 봐요.

 

날씨가 쌀쌀해져서 홀로 추위에 떨고 있는데,

“야옹. 야옹.”

고양이 한 마리가 저에게 다가왔어요. 갈색 털에 흰 줄무늬가 있는 귀여운 고양이었어요. 갓 새끼 티를 벗은 어린 고양이었어요. 밥을 잘 먹지 못했는지 배가 홀쭉하고, 많이 피곤해 보였어요.


고양이는 제 옆에 있는 쓰레기 더미의 냄새를 맡으며 먹을거리를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는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이번에는 저를 ‘쓱’ 하고 둘러보고, 냄새도 이리저리 맡더니, 저의 몸속으로 ‘쏙’ 하고 들어왔어요. 그리고 몸을 ‘돌돌’ 말고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고양이의 체온이 느껴져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뚜껑을 닫아주고 싶었지만, 제힘으로는 닫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렇게 고양이와 저는 하룻밤을 함께 보냈어요.



“학교 잘 다녀와~!”

다음 날 아침, 집 밖으로 나서는 사람들 소리에 고양이는 깜짝 놀라 ‘후다닥!’ 달아났어요.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나 봐요.

 

‘고양이가 다시 돌아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저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어요.


‘투둑! 투두둑! 투두 두두두두두!’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더니,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제 옆에 있던 쓰레기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어요. 힘겹게 버티던 저도 결국엔 길바닥에 나뒹굴고 말았어요. 이리저리 긁히고, 더러워지고, 조금 찌그러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어요.   

 

‘춥고,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전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웠어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그런 걱정과 함께 저는 점점 ‘흐물흐물’해져 갔어요.


‘어떡해. 이대로 있다가는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아.’

너무 약해져 버린 저는 이제 종이상자로 살아갈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글쎄, 그 순간 기적처럼 비가 그치고 바람도 멈추더니 눈 부신 햇살이 ‘짠’하고 얼굴을 내미는 거예요! 전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어요. 고마운 햇볕은 따스한 온기를 저에게 전해주었어요.

  

‘아! 따뜻해~.’

저는 점차 원래의 색을 되찾고, 튼튼해졌어요. 그러다 문득, 고양이가 걱정되었어요.

‘근데, 그 고양이는 괜찮을까?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겠지?’


'삐거덕! 삐거덕!’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끌며 지나가고 계셨어요. 손수레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이상자가 실려 있었는데, 모두 평평한 모양으로 펴져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거리에 떨어진 저를 보셨는지, 손수레를 멈춰 세우고 천천히 다가오셨어요. 제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제 몸을 원래의 평평한 모양으로 만드셨어요. 그리고 손수레의 다른 친구들 위에 저를 살포시 올려놓으셨어요.


전 사실 네모 상자 모양이 더 좋았어요. 무거운 아령도 담을 수 있고 고양이의 따뜻한 집도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이제 다시는 네모 상자 모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손수레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지쳐 보였어요. 아무도 말이 없었어요.

 

“으쌰! 으쌰!”

높은 언덕을 오르느라, 할아버지는 아주 힘드신 것 같았어요. 가벼운 종이 상자들도 많이 모이면, 무거운가 봐요. 할아버지의 등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있었어요. 목에 건 수건도 이미 땀투성이였어요.

 

손수레에 실린 채로 한참을 지나 도착한 곳은 고물상이란 곳이었어요. 저와 같은 종이상자뿐만 아니라 고장 난 전자제품, 낡은 자전거, 타이어 같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여기 있어요. 할아버지.”

“네. 고마워요.”

고물상 주인아저씨가 할아버지께 오천 원을 건넸어요. 할아버지는 축 처진 어깨와 구부정한 등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셨어요.  

 

전 고물상에서 며칠을 보냈어요. 많은 친구가 떠나가고, 많은 친구가 새로 왔어요. 가끔 커다란 트럭이 와서 친구들을 태워가곤 했어요. 그 친구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 거라고 냉장고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셨어요.


‘아, 참!’ 냉장고 할아버지는 고물상의 터줏대감님이신데, 아는 것도 많으시고 인자한 분이세요. 냉장고 할아버지는 고물상에 온 지 20년이 넘었다고 하셨어요. 왕년에는 음식들을 신선하게 만드는 솜씨로 유명하셨대요.

 

“젊었을 적에는 마을에서 내가 제일 큰 냉장고였어. 내가 냉동실에서 얼음을 얼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했지. 좋은 추억들도 참 많아. 특히, 더운 여름날이면 내가 시원하게 만든 수박을 온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맛있게 먹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참 행복했어. 하지만 그런 행복한 시간도 영원하진 않았어. 어느 날, 문이 양쪽으로 달린 냉장고가 나왔지 뭐니. 내가 봐도 정말 크고 멋졌어. 그 냉장고라면 명절에도 걱정 없을 거야. 허허.”


그런데 여기로 온 냉장고 할아버지는 어쩌다 보니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계속 이곳에서 살게 되셨다고 해요.


“이젠 내가 필요한 곳이 없나 봐. 신발장으로도 쓸 수 있는데 말이야.”

그 말을 할 때, 냉장고 할아버지는 너무 쓸쓸해 보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녀석. 귀엽구나. 이리 오렴.”

고물상 주인아저씨가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어느 고양이 한 마리가 고물상을 서성이고 있었어요. 아저씨가 먹고 있는 밥 냄새에 이끌려 왔나 봐요. 그런데,

 

‘앗! 저 고양이는?! 그때 그 고양이잖아!’

맞아요. 며칠 전, 제 몸 안으로 ‘쏙’ 들어와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었던 고양이었어요! 무척 반가웠어요. 어느새 조금 자라 있었는데, 여전히 많이 야위어 보였어요.

 

“자, 여기 있다. 많이 먹으렴.”

아저씨가 먹고 있던 생선 조각을 고양이에게 건네주었어요. 고양이는 잠시 경계하는가 싶더니,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저까지 배가 부른 거 있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날 이후로 고양이는 고물상을 자주 드나들더니, 고물상에서 사는 고양이가 되었어요. 털 색깔 때문인지 ‘누룽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기쁜 건 제가 바로 고양이의 집이 되었다는 거예요. 아저씨는 고양이가 지낼 만한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고물상을 ‘스윽’ 둘러보시더니

 

“음. 이게 적당하겠구나.”

하시며 저를 집어 드셨어요. 그리고 다시 네모 상자 모양으로 만들어 주시는데,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찔끔’ 날 뻔했어요. 다시는 네모 상자가 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아저씨는 햇빛과 비를 막아주는 지붕 밑에 저를 내려놓고, 부드러운 담요를 제 몸 안에 깔아주셨어요.

 

“자, 누룽지야. 여기가 앞으로 네 집이다.”

주인아저씨가 부르자, 고양이는 저에게 ‘종종’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망설임 없이 제 몸속으로 ‘쏙’ 들어왔어요. 따뜻했어요.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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