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사무실에서 나와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잡아탄다. 금요일의 퇴근이다. 그녀는 집에 바로 갈 생각이 전혀 없다. 틴더 오프라인 쇼룸에 방문하는 날이니까.
틴더는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커플 매칭 서비스이다. 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이성 혹은 동성 친구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스마트폰 앱으로 시작한 틴더는 최근 오프라인 쇼룸 서비스까지 진출했다. 여성 고객을 위한 쇼룸만 우선 열었고, 남성 고객을 위한 쇼룸도 곧 연다고 한다.
금요일이면 틴더를 켜고 주말에 만날 이성을 찾는 것이 언제부턴가 수지의 습관이 되었다. 그녀는 캐쥬얼한 만남을 선호한다. 한 사람을 두 번 이상은 만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다.
금요일에 틴더를 통해 상대를 찾고, 주말에 만나 하룻밤을 즐긴다. 물론, 실제 만남에서 서로가 끌리지 않아 잠자리까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지는 이성과의 관계가 진지해지거나 결혼까지 가는 것은 절대 피하고 싶다. 한창 자신의 커리어에 몰두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런 무거운 관계는 덫이 될 뿐이다.
특히, 결혼은 출산에 대한 압박으로 연결될 것이고, 아이라도 낳으면 그녀의 커리어는 끝장날 것이다. 일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녀의 소중한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취향을 유지하기 위해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남자를 만나는 것은 좋다. 감정은 제쳐두고 서로의 육체만을 탐하는 시간. 그 것은 그녀에게 일종의 레져이다.
간혹 잠자리 후에 찾아오는 공허와 죄책감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녀는 아직 과거의 여성상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탓이라 여긴다.
한 달 전쯤 신사동에 오픈한 틴더의 오프라인 쇼룸에 그녀는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
자그마한 스마트폰 상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선 실물 크기로 남자들을 볼 수 있다.
마치 거대한 옷 매장과도 비슷했다. 마네킹 대신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늘어서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듯이 스크린에 전시된 남자들을 고른다.
대형 스크린에 3D로 구현된 남자들은 실제 모습에 가까워서 더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남자들이 직접 스마트폰의 3D 캡처 카메라 기능을 활용해 자신의 모습을 찍어 틴더 앱에 올린다. 성격, 취미, 라이프스타일 등의 개인 정보를 추가 입력하면 자신의 3D 모델이 완성된다. 3D 모델들은 오프라인 쇼룸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연스러운 동작과 함께 구현된다.
수지는 스크린의 한 남자를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살펴본다. 입고 있는 셔츠가 족히 2년은 지난 스타일이다. 탈락. 그녀가 손을 왼쪽으로 가볍게 움직이자 스크린에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탈락.
그녀의 손이 오른쪽으로 움직인 건 23번째의 남자가 나타났을 때이다. 퇴근 후라 조금 피곤한 그녀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
오프라인 쇼룸과 스마트폰의 틴더 앱은 서로 연동되므로 그녀의 선택은 앱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만약, 매칭된다면 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될 것이다.
이번 주말엔 괜찮은 밤을 보내게 될지 조금은 설레는 기분을 안고 수지는 쇼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