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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Oct 18. 2016

콧물쟁이 선표 씨

선표 씨는 콧물쟁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콧물을 달고 살았습니다. 비염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코를 훌쩍거리고, 수시로 코를 풀어줘야 합니다. 


이런 그의 필수 소지품은 단연 손수건입니다. 유치원 시절부터 그의 책가방에는 매일 세 개의 손수건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깨끗한 손수건을 챙겨주었습니다.


서른 살이 된 그는 여전히 손수건을 들고 다닙니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 수가 두 개로 줄어 하나는 가방에 그리고 하나는 주머니에 넣어 다닙니다.


그동안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비록 수술은 겁이 나서 하지 못했지만, 면역력에 좋다는 것은 다 먹어보았고, 식단도 바꿔보고, 운동도 해보고, 체질이 바뀔까 싶어 살도 찌워보았지요.


다행히 지금은 어린 시절에 비해 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콧물쟁이긴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몸에 배서인지 그에겐 손수건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 있습니다.


이 집착은 아마도 일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 심해진 듯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그의 손수건은 콧물이 아닌 눈물로 축축이 젖었지요.


아무튼, 그에게 손수건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급히 나선 출근길에 손수건을 깜빡한 것을 깨달으면 지각을 하더라도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두 개가 아닌 한 개만 가지고 나와도 말입니다.


혼자 사는 그의 빨랫감에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손수건입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색색의 손수건들이 마치 만국기 같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는 시장이나 잡화점에서 새로운 손수건이 보이면 무조건 사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미 평생 써도 다 못 쓸 손수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사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에 몰두하던 그는 손수건을 잠시 책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과 잡담을 나누며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박 부장이 들고 있던 커피를 자기 옷에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 칠칠치 못하고 무신경한 박 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에 있던 선표 씨의 손수건으로 자신의 불룩한 배에 묻은 커피를 닦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선표 씨의 눈에는 손수건이 지저분한 박 부장의 손아귀에서 시커먼 커피를 흡수하는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늘 조용하고 온화하던 선표 씨는 박 부장의 손에서 손수건을 난폭하게 빼앗으며, 시원한 욕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때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박 부장과 주변 다른 직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선표 씨는 머릿속으로 시간을 되돌리려 애써보았지만, 시곗바늘은 계속 흘러가고만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머리 숙여 사과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참작되어 잘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때 이후로, 박 부장이 대놓고 선표 씨를 무시하고 따돌리자 자연스럽게 다른 직원들도 그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손수건 사랑은 여전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손수건을 다른 사람에게 건넨 건 아마도 기연 씨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선표 씨 회사의 신입사원인데, 실수가 많은 데다 매몰찬 사수를 만나 늘 야단만 맞으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선표 씨는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고 죽은 듯이 지내고 있었고, 다른 부서이기도 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거나 부딪힐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표 씨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원하게 코를 풀려고 자신의 비밀 공간인 비상계단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늘 그가 앉아 쉬는 계단에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기연 씨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인기척에 깜짝 놀라 급히 눈물을 닦으며 자리를 피하려 하였습니다.


왜였을까요. 


가만히 서 있던 그는 자기 앞을 지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습니다. 잠시 주춤하던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손수건을 공손히 받았습니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까 코를 풀었던 손수건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쫓아가서 빼앗을 용기가 나지 않아 그는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며칠 후, 복도에서 그는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부끄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치려던 그를 그녀가 가로막았습니다.


그녀가 내민 양손에는 그의 손수건과 음료수 캔이 있었습니다. 그날 빌려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깨끗이 세탁하고 다리기도 했다는 말과 함께. 


자기 자리로 돌아온 그의 코에선 어김없이 콧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방금 그녀에게서 받은 손수건으로 코를 닦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늘 어머니가 챙겨주었던 손수건에서 나던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습니다.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손수건으로 슬쩍 닦아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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