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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25. 2022

스투키

오전 업무를 시작하려던 수빈의 눈이 화분에 멈추었다. 며칠 전에 승진 기념으로 친구 정혜에게 받은 스투키.

 

책상에 두기 딱 좋은 사이즈의 깔끔한 화이트 컬러 화분. 다섯 개의 긴 손가락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귀여운 스투키.


컴퓨터 모니터에서 빠져나와 잠시 스투키를 보고 있으면 조금 힐링이 되곤 했다.


‘내가 어제 퇴근 전에 물을 줬던가?’


화분의 흙이 물에 젖어 있었다. 수빈은 분명히 최근에 물을 준 기억이 없다.


스투키는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는 식물이다. 게다가 이렇게 흙이 흠뻑 젖을 만큼은 절대 주지 않는다.

그녀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사무실의 화분들이 죽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저마다 책상에 다육이라든지 아이비라든지 작은 화분들을 올려놓고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하나둘씩 시들어 갔다.


물론, 화분이 죽는 건 흔한 일이지만 여러 개의 화분이 비슷한 시기에 같이 죽어가는 건 이상했다.

자신의 화분을 자세히 살펴보던 수빈은 검지와 중지로 흙을 꼭꼭 눌러보았다.


습기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냄새를 맡아봤지만, 흙냄새 말고는 별다른 것은 없었다.


평소에 범죄 영화를 즐겨보던 그녀는 노련한 형사처럼 행동하고 싶어졌다.


잠시 망설이다 혀에 손가락을 갖다 데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이건 분명히 짠맛이야.’


꽤 진한 농도의 짠맛이었다.


‘왜 짠맛이 나지? 혹시, 소금물?’


그녀는 서둘러 인터넷 검색을 했다. 소금물을 지속해서 주면 화분이 죽는다는 설명이 있었다.


‘누군가 화분을 죽이고 있어.’ 

‘누구지?’

‘어제는 나와 오대리가 마지막에 퇴근했어. 그럼, 오늘 아침에 물을 줬다는 건데.’

‘누가 가장 먼저 출근했지?’


수빈은 옆자리의 신입사원 영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기 영호 씨. 오늘도 일등으로 출근했어요?”


“아, 아뇨. 오늘은 이등이에요. 대표님이 먼저 오셨던데요.”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실로 걸어가 노크를 했다. 


“네. 들어와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 수빈 과장. 무슨 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거기 앉아요.”


“화분을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빈은 의자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직원들의 화분에 몰래 소금물을 붓는 사람이 있어요.”


대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정말인가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혹시 누가 그랬는지는 알아요?”

대표는 회의 중에 의견을 물을 때의 표정으로 수빈을 보았다.


“아뇨. 대표님이 오늘 가장 일찍 출근하신 것으로 아는데, 누가 제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을 보셨나 해서요.”


“아~. 글쎄요. 오자마자 여기에만 있었지. 사무실은 못 살펴봤네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감시를 했을 텐데.” 

대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수빈은 더 캐묻고 싶었지만, 참고 일어서기로 했다.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수빈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대표가 혼잣말처럼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직원이 자신의 화초를 키운다는 건 문제가 좀 있는 건 아닐까? 

회사의 물을 쓰고, 공간도 쓰고, 직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일을 위해 쓰는 게 회사와 자신을 위해 더 좋잖아. 안 그래?

물론, 남의 화분에다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안 되지만 말이야.

아니. 뭐 그렇다고. 아. 바쁜데 잡아서 미안. 이만 나가봐요.”


대표실의 문을 닫는 수빈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수빈은 오늘 퇴근 할 때, 자신의 스투키를 집에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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