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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07. 2017

페미링

 

하. 기어코 나도 페미링을 써야 하는 건가.


페미링을 든 채 고민하는 나를 아내가 우습다는 듯이 보고 있다.


당연히 난 페미니스트라고 자신했다. 다른 남자들보다 앞서 페미니즘에 관해 공부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그 말에 성차별적 부분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페미링은 늘 우스운 장치라고 생각했다. 귀에 걸기만 하면 페미니즘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억제하여 남성을 페미니스트로 만들어 주다니. 멍청하지 않은가.


지성의 힘으로 자신의 의지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지 그런 장치에 기대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페미링이 자신의 진보성을 여자들에게 어필하는 아이템이 되면서, 남자들은 너도나도 패션 액세서리처럼 페미링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베인들 사이에 가장 먼저 유행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이제 여성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선 페미링이 필수가 된 것이다.


난 절대 페미링 따위는 사용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페미니즘에 찬성하지만, 그런 기계 장치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회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실수를 하였고, 주의를 받았다. 인사 고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결국, 퇴근길에 페미링을 구매해야 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귀에 장착했다. 동그란 고리처럼 생겨서 귀 뒤쪽에 걸기만 하면 됐다. 별 느낌은 없었다.

 옆의 아내를 바라보자 퉁퉁 붓고 멍든 얼굴로 날 비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페미링이 효과는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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