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유명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서른세 살의 여성입니다. 현재 여유로운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연애하지 않은 지는 어느덧 2년이 되었네요. 마지막 연애가 좋지 않게 끝나, 그 후로는 일에만 빠져 살아왔습니다.
일 말고는 이렇다 할 취미도 없어요. 침대에 누워 예능 프로나 미드 같은 걸 짬짬이 보는 정도랄까요.
그런 저에게 요즘 남에게 말 못 할 괴상한 취미가 생겼습니다. 바로 인터폰 훔쳐보기입니다.
네. 그 인터폰이요. 문을 열어 줄 때 쓰는 벽에 붙은 전화기 말이에요.
그러니까 몇 개월 전부터 인터폰의 화면으로 누군가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소리가 들리면 저의 심장이 콩닥콩닥하기 시작합니다. 아. 이제는 발소리만 들어도 그인지 알 수 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며시 인터폰의 화면 버튼을 누르고 그가 나타날 때까지 맘을 졸이며 기다립니다.
마침내 그의 모습이 작은 회색빛 사각형 세상에 나타나면 전 행복에 겨워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입니다. 정말 최악이죠. 서른이 넘어서 이러고 있다니요. 관음증의 일종일까요.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
그는 젊은 남자입니다. 스포티한 스타일이 눈에 띕니다. 저보다 어려 보이던데...
제가 인터폰으로 몰래 지켜본다는 것을 알면 절 얼마나 혐오스러워할까요.
그와 집 근처에서 마주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전 왠지 저의 행각이 들킬 것 같은 두려움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지나갔지요. 그러다 망설이며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그가 저를 빤히 쳐다보지 않겠어요? 전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리고 발길을 재촉했지요.
아쉽게도 그런 그를 볼 수 있는 것도 금요일 뿐이에요. 매일 볼 수 있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없겠지만, 그는 금요일에만 온답니다.
그래서 전 지금 아주 행복하답니다. 오늘이 바로 금요일이거든요.
아. 지금 그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어서 인터폰 화면을 켜야겠어요.
1층, 2층, 3층.
드디어 그가 화면에 나타났어요. 그리고 저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네요.
"치킨이요."
오늘은 양념으로 시켰어요. 밥이랑 같이 먹으려구요. 내일 아점도 문제없겠어요.
제가 사랑에 빠진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