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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25. 2022

동물원 취업

진국은 동물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 가까운 이 동물원은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평일에는 방문객도 거의 없다. 한적하게 동물들을 구경하며 산책하기 좋았다.


그는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을 질투와 선망이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도 안 하고 매일 놀고먹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그는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일 년 전에 퇴사하고 지금까지 트위치에서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구독자 수가 늘지 않아 한 달 수입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 도전한 것인데, 발전이 없고 수입도 늘지 않으니 의욕이 사라지고 불안했다. 다시 취직하는 것도 고려 중이지만, 회사를 또 다닌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썩은 위장들에서 올라오는 알코올과 마늘 냄새로 가득한 출퇴근길의 지하철.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시키니까 하는 일들.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보다 보잘것없는 수입.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그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무척 부러웠다.


‘너희들은 아무 고민이 없지? 먹고 자고 싸는 게 일이잖니.’


그러던 그는 빈 우리 하나를 발견했다. 


‘응? 여기는 비어있네. 전에 어떤 동물이 있었더라.’


빈 우리의 전 주인을 떠올려 보던 그의 머리에 다른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동물원 관리실을 찾았다.


관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 앞의 책상에 여자 직원이 곰 젤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진국은 그 직원에게 여기서 제일 높으신 분이 누군지 물었다.


그녀는 젤리를 쫄깃쫄깃 씹으며 손짓으로 안쪽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진국은 고맙다고 하며 그녀가 가리킨 자리로 갔다.


오십 대 정도에 하마를 닮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라 보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총 책임자시죠? 문의할게 있는데요.”


“네. 무슨 일이시죠?”


남자는 진국을 보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목소리는 친절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공고가 나온 일이 없을 텐데요.”


“그게 아니라 동물원에 빈 우리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 우리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요?”


남자는 그제야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진국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월급은 안 주셔도 돼요. 그냥 다른 동물들처럼 먹여만 주시면 됩니다. 아플 때 보살펴 주시면 더 좋고요. 동물원에 인간이 전시된 곳은 없으니까 차별화도 되고 동물원 입장에서도 좋지 않을까요?”


“진심이시죠?”


심각한 표정의 남자는 더 하마처럼 보였다. 진국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두 눈동자가 냉철하게 빛났다.


“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용기를 낸 것입니다!”


진국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흠. 그럼 좋습니다. 안 그래도 그 우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 중이었어요. 요즘에는 새로운 동물을 구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저도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도 동물인데 왜 동물원에 전시되지 않는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인간 우리는 필요하다고요.”


며칠 후, 진국은 동물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우리는 침팬지 우리의 옆이었다. 아마도 가까운 종끼리 자리를 배치한 듯했다.


그는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먹고 자고 싸고 멍때리는 것이 일이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처음에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면서 알몸으로 생활했다. 여름이라 그게 시원하고 편했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아이들도 코끼리 다음으로 그를 좋아했다. 아이들이 간식도 많이 던져주어 그의 주전부리는 늘 풍족했다. 


사람들은 진국을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동물원의 다른 동물들을 보듯이 그를 흥미롭고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국은 천장에 매달린 타이어 그네를 타기도 하고, 물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가 재롱을 피울 때마다 구경꾼들은 손뼉을 치고 사진 찍기 바빴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의 희열을 느꼈다. 트위치 방송을 할 때 그토록 받고 싶었던 관심을 원 없이 누렸다.


그가 동물원에서 생활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 하마를 닮은 남자가 그의 우리를 찾아왔다.


“진국 씨. 어때요? 생활에 불편한 건 없어요? 요즘 진국 씨 인기가 많아서 저도 무척 기쁩니다. 이번에 제가 진국 씨가 좋아할 만한 소식을 하나 가져왔어요.”


옆으로 누운 채 자신의 사타구니를 오른손으로 벅벅 긁으며 진국은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다름이 아니라, 진국 씨와 함께 일할 새 직원을 뽑았답니다. 여자분이에요. 그분이 직접 지원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진국 씨와 함께 생활할 예정입니다.”


진국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자라고요?”


“네. 맞아요. 진국 씨 또래예요. 이제 혼자 외롭지 않겠어요.”


며칠 후, 진국의 우리에 그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김은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어서 오세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전진국이에요.”


두 사람은 함께 앉아 소쿠리에 쌓인 과일을 먹었다. 


“근데 왜 여기에 지원하신 거예요?”


“제가 사실 이 동물원 단골인데요. 여기 올 때마다 진국 씨를 보면 참 부러웠거든요. 여유롭고 걱정 없이 사는 모습이 너무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그녀의 적응은 빨랐다. 어느새 진국처럼 발가벗고 자유를 만끽했다. 먹고 자고 재롱 피우고 싸는 생활의 반복이 행복했다.


그들 우리의 인기는 더 많아졌다.


그들은 이웃의 원숭이들처럼 구경꾼들 앞에서 싸우기도 하고, 짝짓기도 했다. 그럴 때면 구경꾼들이 더 환호하고 기뻐하며 그들의 스마트폰에 추억을 저장했다.


일 년이 지나갔고, 그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동물원의 손님들이 꼭 보고 가는 동물 중의 하나이다.


두 달 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 잠깐 화제가 되었다. 처음으로 동물원에서 태어난 인간 아기로 TV 뉴스에도 출연했다.


이제 세 식구가 된 그들은 함께 뒹굴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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