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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Nov 05. 2015

오줌과 무의식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걱정이 좀 있습니다. 이게 참, 말하기 민망한 내용인지라 망설여지긴 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털어놔 보겠습니다. 


아,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게 오줌 얘기라서. 네. 오줌이요. 


흠. 그게 말이죠. 물소리를 들으면 자꾸만 오줌이 마렵습니다. 네. 제가요. 


그러니까 세면대나 샤워기 같은 거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물을 이렇게 틀면 물이 '쏴' 하고 나오잖아요. 근데 그 소리를 들으면 오줌이 갑자기 마려워 오는 겁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하, 이게 참 난감합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전 분명 오줌이 전혀 마렵지 않았는데 손을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톡 돌리면, 방광의 수도꼭지도 틀어지는지 바로 오줌이 마려워 오는 겁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을 마구 급하게 씻고, 서둘러 변기 앞에 서야지요. 별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어떨 때는 물을 잠그면 마려웠던 느낌이 '스르르' 사라지는 겁니다.


아, 다행히 오줌을 눈 직후에 손을 씻을 때는 괜찮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줌 누고, 손 씻고, 오줌 누고, 손 씻고의 무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어쨌든 전 이런 느낌이 너무 싫고 불편한 겁니다. 그래서 전에 한 번은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회사에서 건강 검진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어떤 내과였는데, 건강 검진의 마지막 절차로 의사와 면담을 하는 시간이 있더군요. 


의사가 저한테 최근 불편한 것이나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손 씻을  때마다 자꾸 오줌이 마렵습니다. 이건 왜 그런 걸까요?' 하고 물었지요. 하지만 그 의사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의사분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나 봅니다. 


여하튼 전 이것이 질병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찝찝하긴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원인 분석을 해보았지요. 


사실 처음에는 '손을 씻는 행위'에 원인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손 씻는 게 너무 귀찮고 싫어서,  손 씻는 시간이 일찍 끝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가 했지요.


하지만 꼭 손 씻을  때뿐만이 아니라 샤워나 설거지를 할 때도 반응이 오는 것으로 봐서는 '물소리'가 원인일 수 있었습니다.


고심 끝에 전 이 문제는 무의식의 영역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과연 이 '물소리'가 대체 저의 무의식에 있는 어떤 버튼을 눌렀기에 이런 오줌 사태를 일으키는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 보았습니다. 


'쉬~' 


그때, 불현듯, 마치 mute에서 한 칸 올린 정도의 소리가 귓가에 울리지 않겠습니까. '쉬~'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쉬~' 


어릴 적, 바지와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티셔츠는 가슴까지 끌어 올려서 오줌을 누던 시절, 어머니의 '쉬~'소리가 들리면 이상하게도 뭔가 조급해지며 오줌이 잘 나왔지요. 그 '쉬~'소리는 방광의 요정을 부르는 소리였을까요. 


전 바로 이 '쉬~'소리에서 원인을 찾아내었습니다. 물소리와 '쉬~'소리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제가 물소리를 들을 때, 이 물소리가 제 무의식의 어항을 채워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오줌을 마렵게 했던 것이지요.


어때요. 제법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 그럼 이 물소리가 무의식에 도달하지 못하게 방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손을 씻을 때 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스텝을 밟는다거나, 딴생각을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 방법이 조금 효과가 있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무의식이란 놈은 만만치 않더군요.


아, 자꾸 오줌 얘기를 해서 그런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군요.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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