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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25. 2022

마지막 결혼기념일

다가오는 60번째 결혼기념일에 노부부는 함께 죽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서로 사랑해온 두 사람은 누군가 먼저 죽어 홀로 남겨지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 상실감을 겪는 것은 지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식이 없는 두 사람은 서로 만이 유일한 가족이자 벗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세월 속에서 마모되어 흐릿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완전해졌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온 수많은 추억이 쌓여 두둑한 마음의 포만감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면제를 모아왔습니다. 


일주일 후에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에 그 약들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것입니다.


결혼기념일의 삼 일 전 아침. 아내가 깨어나지를 않았습니다. 원래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자는 동안 동작을 멈춘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요히 누워있는 그녀를 꼭 껴안고, 약속을 어기면 어떡하냐고 자기도 어서 데려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몇 번이나. 


그는 서랍에 넣어둔 수면제를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차마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아내의 장례를 치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시신이 부패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슬픔을 견디며 묵묵히 아내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조문객도 없는 차분한 장례식이었습니다. 평소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아내의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아내의 화장까지 마친 후, 그는 아내의 납골함을 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잠시 후, 오래된 사진 앨범을 펼쳤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본다는 기분으로 앨범을 한 장씩 넘겼습니다. 


사진들 속에서 그들은 세계 곳곳을 누볐고, 조금씩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앨범은 열권이나 되어 사진마다 꼼꼼히 들여다보니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앨범들을 다시 깔끔하게 꽂아두고, 그는 서랍장에서 수면제를 꺼냈습니다. 


아내의 몫까지 모두 먹다 보니 몇 번에 나눠서 삼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편안히 누웠습니다. 아내의 납골함은 평소 그녀처럼 그의 오른쪽에 두었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마지막 결혼기념일입니다. 그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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