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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오키나와#2

by 유후루



오키나와에서 지낸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했습니다. 5일 동안 진정한 현지인 라이프를 누려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제가 묵은 곳은 거실과 부엌 그리고 방도 하나 있는 작은 아파트였습니다. 8층에 테라스도 있어서 풍경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결국, 알아듣지도 못하는 텔레비전 다음으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많이 감상한 풍경이 되었지만요.





스마트폰과도 거리를 둔 여행을 하기 위해 로밍도 하지 않고 왔었죠. 물론, 오키나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안 돼 엄청나게 당황해서 공중전화로 로밍을 신청했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땀을 닦으며, 이 낯선 나라에서 큰 건 하나 해냈구나, 그 위급한 상황에서 공중전화를 생각해내다니 하며 한 뼘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했죠. 저에게 여행이란 '성장'이라 할까요.


전 저만의 독창적인 여행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행가이드 북도 사지 않았죠. 오로지 저만의 여행을 만들어가려고요. 사람들이 흔히 가는 주요 관광명소는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결국, 어디 갈지 몰라 숙소와 편의점이 저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지만요. 날씨가 너무 덥더라고요.




하지만 무료한 저의 여행 중에도 조금은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어떤 친절하신 할머니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할머니분들은 어느 모노레일 역에서 만났습니다. 오키나와 대학교란 곳을 가던 길이었지요. 신선하고 젊은 문화를 만날 것 같은 예감에 제가 고른 코스였죠.


그 대학교에서 가까운 역에 도착해 어느 출구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할머니 두 분께서 지나가시더군요. 사실 지도를 보고 저 혼자서도 길을 찾아갈 수는 있었습니다. 구글맵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여행을 오기 전에 '일본어로 길 묻기'를 외워뒀거든요. 그걸 써먹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여행가로 발돋움하고자 하였습니다.


전 그 할머니 두 분께 쓰미마셍하며 다가가, 역에 있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대학으로 가려면, 어느 출구로 가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두 분은 잠시 대화를 나누시더니, 저에게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갔죠.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동작과 느낌으로 할머니들께서 가는 길에 저를 데려다주시겠다는 것 같았습니다.


참 친절하신 할머님들을 만났구나, 여행이란 이런 우연한 만남의 연속인 건가 하며 감동했더랬죠. 일본어를 한 번 더 쓰고 싶어서, '다이조부데스까?'라며 말을 건네니, 아주 환한 미소로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욘사마와 느낌이 아주 살짝 비슷해서 잘 해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할머니 두 분은 각자 양산을 쓰시고, 전 삼단 우산을 쓴 채 꽤 긴 거리를 걸었죠. 오키나와의 할머니분들과 함께 걸으니, 왠지 제가 오키나와에서 꽤 오래 산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들께서 다 왔다며 손으로 가리키신 곳은 오키나와 대학이 아닌, 다른 모노레일 역이었습니다. '응?! 아까 내가 지도에서 잘못 가리킨 건가?'라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이곳이 아니라고 하기가 미안해서 몇 번이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며 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만 안에 있다가 할머니들께서 가시면 나가려고요.


모노레일 역은 지상에 있다 보니, 유리를 통해서 밖이 보이더군요. 밖에서도 역 안이 보이고요.


그런데 그 할머니들께서 안 가시고, 제가 있는 쪽을 계속 바라보고 계신 거예요. 아마 제대로 타고 가는지 걱정이 돼서 그러신 것 같았어요.


제가 모노레일을 타러 들어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역으로 들어와 타는 법까지 알려주실 것 같아 기둥 뒤에 숨어 있었지요.


그리고 슬쩍슬쩍 할머니들께서 가셨는지 확인하는데, 이제는 한 분이 더 오셔서 세 분의 할머니가 제가 있는 쪽을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한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 대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기둥 뒤에 숨어 있다가 조심스럽게 밖을 보니 저기 다른 길로 가고 계시더군요. 길을 가시면서도 한 번씩 뒤로 돌아보셔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다시 역 밖으로 나와 구글맵으로 확인해보니 그 대학교의 반대 방향으로 왔더군요. '허허. 이런 재미있는 해프닝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지.'하며 경험이 풍부한 여행가가 지을법한 여유로운 미소를 뽐내었죠. 그리고 산뜻하게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무더위 속에 걷고 또 걸어 도착한 대학교 주변은 썰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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