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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물은 아니다

by 유후루

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워낙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을 동경했다. 첫 회사를 일 년 육 개월 만에 그만두고, 연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홍대입구역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의 원장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던 연기자이기도 했다. 꽤 잘생긴 외모였다.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다 보니 학원 수업의 자세한 커리큘럼은 기억나지 않는다. 발성 및 발음 연습, 대본 읽기, 즉흥 연기, 노래 수업 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난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원생 중에서는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곳은 입시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내가 속한 성인반도 대학생 위주였다.


수업들은 재밌었다. 집에서 연습해온 자유연기를 선보이는 시간도 있었다. 내가 했던 것 중 하나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란 영화에서 유준상 배우가 연기했던 장면이다. 술 취해서 진상을 부리는 장면이었는데, 나의 연기가 끝난 후, 선생님이 술에 취한 건지 바보 흉내인 건지 모르겠다는 평을 남겼다. 하지만 원생들 중의 한 명이 내가 연기를 마치자, 놀랍다는 눈빛으로 손뼉을 쳐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감동을 하였던 것일까.


일주일 중에 하루는 현장에서 활동 중인 뮤지컬 배우가 와서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어떤 뮤지컬 노래를 하나 배웠는데, 쉽지 않았다. 나의 발성이 답답하게 억눌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기가 없어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기 위해 밤에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로 갔다. 그곳엔 아주 넓은 야외 대강당이 있었다. 무대에 올라가 혼자 노래를 연습하곤 했다. 밤이었지만 강당의 객석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부끄러웠다. 주위가 어두워서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최대한 크게 노래를 부르려 노력했다. 간혹 웃음소리와 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배우의 길이란 험난한 것이었다.


경상도 출신인 나에겐 발음과 표준어 억양이 가장 어려웠다. 원장 선생님이 진행하던 발음 수업은 나에게 악몽이었다. 계속 반복해도 개선이 되지 않는 나의 발음이 답답하여 선생님이 조금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나의 멘털이 부서지는 시간이었다.


학원은 두 달 정도 다녔고, 그 후로는 단편 영화들에 출연하기 위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주로 대학생들이 만드는 영화들이었고, 그중 몇 개에는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 헤아려 보니 총 네 편이었다. 영화를 찍는 것은 즐거웠다. 워낙 짧은 영화들이라 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다 찍었다. 그래도 난 진지하게 연기에 임했다. 그때 찍었던 것을 지금 보면 '내 연기가 나쁘지 않은데?'라고 자화자찬하곤 한다.


촬영장에서 만난 다른 배우 중에 오랜 경력을 가진 분도 있었다. 수많은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해온 베테랑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낯이 익다고 느꼈다. 그분과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가 배우가 되려는 것을 만류했다. 너무 힘겨운 길이라는 이유였다. 본인이 시작할 당시엔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배우를 한 것인데, 대학도 나왔고 직장도 잘 다녔으면서 굳이 배우 일을 하려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함께 일했던 유명한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내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본인도 사실 배우 일만으로는 먹고살기가 쉽지 않아, 다른 부업도 병행한다고 했다.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나에겐 와닿았다. 그분은 정말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해주는 충고였다. 나에게 앞으로 펼쳐질 그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돌파할 용기와 각오가 있는지 숙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안정적인 수입은 없을 것이고, 탈락으로 돌아올 수많은 오디션, 세월이 흘러도 기약 없는 성공. 부모님이 부자여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나 혼자 힘으로 버티고 해낼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기가 이번에 새로운 회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쪽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 팀장은 예전 회사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일하는 분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배우가 되기 위한 도전은 끝이 났고, 나는 다시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배우를 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긴 하다.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생각으로만 끝난다. 죽을 때가 되면 도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한편, 내가 찍은 영화 중에 가장 명작은 '나 당신 여자 친구랑 잤어.'라는 작품이다. 에로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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