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바빠도 여행 떠날 하루쯤은 있겠지 #1
여행으로 대구를 찾은 것은 세 번째다. 첫 번째 대구 여행은 혼자, 두 번째는 다섯이서, 이번 여행은 셋이서 갔다.
처음으로 만난 대구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저녁에 대구에서 만나 함께 세미나를 떠나기로 해서, 내려오는 김에 아침 일찍 도착해 반나절 간 혼자 동네를 누볐다. 근대 역사 문화거리의 길다란 종이 지도를 한 손에 들고, 도장을 찍으러 부지런히도 걸었다. 손이 다 트도록 추운 날이었다. 사람 하나 없는 길거리를 볼이 빨개지도록 다니니 안내소나 카페에 들어가면 모두들 안쓰러워하며 몸 좀 녹이고 가라고 난로 옆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친절함이 마음에 따뜻하게 남아 다음 대구 여행을 기약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이례적으로 동행이 많은 여행이었다. 나와 룸메이트, 그리고 우리의 고등학교 동창(룸메이트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협력업체에서 친했던 대리님과(주로 남쪽 지방 일을 함께 하던 시공업체의 베이스가 대구에 있었다) 그 회사 사장님의 아드님의 여자친구(세미나 때 도와주러 온 것을 만나서 두 번째 대구 여행을 영업했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멤버가 모였다. 대리님의 차를 얻어 타고 팔공산의 카페를 들르고, 저녁에는 닭똥집 튀김과 뭉티기를 먹었다. 지난 겨울 혼자 걸었던 거리에 꽃이 피어나는 봄이었다. 친구들을 이끌고 사진이 잘 나올만한 곳을 골라 다녔다. 서울에서 내려간 세 명은 에어비앤비에서 묵고, 대구의 두 명은 집에 가서 잤다가 그 다음 날 또 만나 함께 놀고 저녁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이번 여행은 조금은 충동적으로 계획한 여행이다. 회사 일에 찌든 룸메이트와 여행이 고픈 내가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차를 한 잔 하다가 그 차가 대구에서 사 온 것이란 걸 기억해냈고, 찻잎이 바닥을 보인다는 사실에 반쯤은 기뻐하며 일정표를 보고 빈 주말 하루를 잡았다. 그리고 함께 갈 친구가 섭외되면 같이 가고, 아니면 둘이서 오붓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아쉽게도 여러 친구가 일정 때문에 거절한 상황에서, 우리 집 근처에서 일을 마치고 갑자기 저녁을 먹으러 놀러 온 룸메이트의 직장동료에게 대구 여행을 영업했다. 흔쾌히 오케이를 받아내고, 바로 기차표를 예매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얼렁뚱땅 시간이 흘러 여행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 늦게까지 야근을 해서 눈도 못 뜨는 룸메이트를 어화둥둥 구슬려가며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할 정도로 바빠서, 한 집에 살면서도 정말로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아침이었다. 집밖으로 나오니 겨울 냄새가 코와 입을 가득 메운다. 도로 저 멀리 발그레한 새벽 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기차 출발 시간인 7시 22분보다 간신히 십 분 일찍 역에 도착했다. 마침 동행도 역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셋 다 일에 찌들어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였다. 열차를 타자 마자 기절하듯이 잠들었고, 도착하기 한 시간 전에 눈을 떠서 그제서야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무궁화호가 대구에 도착한 것을 알려온 것은 열한 시였다. 오래 걸리는 기차를 타서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다들 묵은 피로를 간신히 풀고 내릴 정도는 되었다. 우리를 여행으로 이끈 그 카페를 찾아 일단 걸었다. 대구역에서 도보로 15분. 대구 3회차 가이드의 “이 곳은 대구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노는 동성로입니다”라는 성의 없는 설명에 관광객 두 명은 호응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서울을 떠나니 일에서 멀어진 것 같다며 행복한 이들이다.
곧 카페에 도착했다. 밖과는 달리 훈훈한 기운이 가득해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마음이 설렜다. 몽글몽글한 마음은 맛있는 케이크로 가득 찬 쇼케이스를 보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람 수만큼의 조각 케이크를 주문해버렸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고 다녀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 틀린 것이 없다. 열차에 타면서부터 아아를 찾던 동행이 융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받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고, 룸메와 나는 홍차와 함께 나온 찻잔에 시선을 빼앗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찻잔을 온갖 각도에서 감상하며 다음 여행지는 러시아로 가기로 했다.
케이크를 향해 각자 셔터를 열심히 눌러대고, 진실의 미간을 구겨가며 맛을 찬양하다가 말초신경까지 당분이 어느 정도 도달하자 비로소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는 공원의 녹음이 우거져 있고, 가게 안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다. 온통 금색으로 빛나는 장식에 마음 속까지 반짝반짝한 기분이다. 어디선가 “먀-옹”하는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이리저리 활보하고 있다. 귀여움 한 스푼이 디저트와 함께 입 안으로 녹아 든다.
배불리 커피와 차와 디저트를 즐기고 사장님께 다음 대구 여행을 기약하며 인사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왔다.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던 곳의 정체는 바로 228 기념 중앙 공원이었다. 옛 중앙초등학교 자리를 대신한 이 공원은 1960년 2월 28일에 일어난 대구 학생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노랗고 빨간 가을의 색을 입은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서야 가을을 만났다. 갖가지 벌레의 형상을 한 CCTV를 단 가로등 사이를 지나며 걷다가 나와 택시에 올랐다.
점심으로는 콩국수를 먹기로 했다. 콩국수라면 당연히 차갑게 나오는 여름 음식을 생각했는데, 이 곳은 계절 따라 차갑게도, 따뜻하게도 나온다고 해서 놀랐다. 콩국수 한 그릇에 육전 하나를 시켰다. 달달한 음식을 많이도 먹고 와서 김치 한 조각 딱 입에 넣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밑반찬으로 나온 것은 김치 대신 고추였다. 김치의 맛이 강하니 콩국수의 맛을 해쳐서 고추를 대신 준다는 설명이 뒤를 이었다. 소금으로 간한 진한 콩국수 위에는 김가루와 애호박이 올려져 있었는데, 잘 비비니 김의 고소한 향이 면에 짙게 배어 이색적인 맛을 만들어냈다. 따뜻한 콩국수는 정말이지 겨울과 잘 어울리는 의외의 요리였다.
콩국수의 맛을 배가시킨 것은 다름아닌 육전이었다. 겉보기에는 얼핏 육전이 아니라 표고버섯전으로 보이던 이 음식은, 얇게 저민 고기를 버섯 아래에 숨겨두고 청양고추를 잘게 썬 반죽으로 감싸놓았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전의 맛을 청양고추가 잡아주었다. 콩국수 위에 전을 한조각 올려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건강하고 든든한 한 끼다.
다시 택시를 타고 대구 박물관으로 향했다. 벽돌로 만든 건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30분 정도 택시를 타고 갔는데, 정말 쾌적하게 갔다. 서울에서도 택시를 타면 젊은 여자가 탔으니 불쾌한 말을 건네는 택시기사가 어쩌다 한 명씩 있었는데, 대구에 오니 그 빈도가 확 높아진다. 콩국수 집에 갈 때 탄 택시의 기사가 제일 가관이었다. 애교를 부리면 자기가 기분이 좋아져서 가게 앞에 딱 내려주겠다고 해서 빈정이 상해 정색하고 그냥 사거리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반말은 기본이고, 골목 쪽으로는 들어가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부른 택시는 카카오 블루 택시였다. (이 글은 광고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흰색 차량에 카카오 프렌즈 그림이 귀엽게 붙어 있어 신기해하며 탔는데 기사는 목적지만 확인하고 말 한마디 안 붙이며 묵묵히 운전해 갔다. 차 안은 기분 좋은 방향제 냄새로 차 있었다. 타다가 택시 문화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느낀 부분이었다. 단돈 천원 추가에 기분 좋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점과, 상대가 어떤 언행과 행위를 하지 ‘않는’ 데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데서 나오는 불쾌감,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맹렬히 부딪쳤다.
아무튼 카카오의 도움으로 기분 좋게 무사히 국립 대구 박물관에 도착했다. 입구 앞에 서니 붉은 색 벽돌과 대비되는 흰 색 보와 기둥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 위로는 청록색 지붕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오후가 되어서인지 동향인 입구에 그림자가 져서 조금 아쉬웠다. 아침 일찍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니 따뜻한 햇살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눈 앞에 세피아 필터가 끼워진 것만 같다. 경사진 천창이 홀 위에 하늘을 드리우고, 붉은 벽돌이 안쪽 벽까지 타고 들어와 있다. 주말이라 대부분이 아이를 동반한 관람객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쩌면 딱딱할 수 있는 박물관의 공기를 활기차게 만들어주고 있다. 몇몇 전시를 둘러보고, 체험실에서 자석으로 만든 책갈피를 몇 개 챙겨들고 나왔다.
앞마당에는 팽이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평균 연령 29.6세의 어린이들도 빠질 수 없다. 동행인은 그간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모양인지 팽이치기에 굉장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나는 우드락을 깎으며 섬세하게 다져진 손놀림을 팽이채로 선보여 주었다. 룸메이트는 팽이 깎는 노인이었다. 디저트로 채운 체력을 팽이에 쏟아 넣었지만 우리 셋은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팽이치기 고수는 옆에서 여유 있게 번걸아 가며 팽이를 치던 평균 연령 11세의 어린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뿌듯해진 셋은 다시 길을 나섰다. 박물관은 야트마한 언덕으로 되어 있는 유적공원과 범어공원의 옆구리에 끼어 있다. 범어공원 북쪽 끝에 있는 책방을 하나 찾아 공원을 가로질러 가려고 했더니, 아쉽게도 유적공원이 공사 중이라 갈 수 없었다. 대신 범어공원 동쪽의 아파트 단지 사이 길로 가기로 했다. 뜻밖에도 꽤 좋은 산책로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공동 난방 시스템의 굴뚝이 반가웠고, 창문의 개수를 통해 유추해 낸 아파트의 평형을 부동산 게시판에서 확인했으며, 베란다의 형태를 통해 유추해 낸 아파트의 연식을 지하주차장의 형태를 통해 재검증했다. 또, 가을 옷을 입은 가로수와 초록 빛깔 상록수의 키가 큼지막한 것을 통해 오래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방은 오래된 책으로 가득 차 있는 중고서점이었다. 간단히 구경하고 나와 택시를 타고 두 번째 카페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녹차 롤케익이 맛있다고 해서 찾은 카페였다. 녹차와 홍차로 만든 롤케익에 음료를 주문하고 둘러보니 <월리를 찾아라> 퍼즐이 보였다.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퍼즐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케익을 먹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대구에 왔으면 막창을 먹어야 한다는데, 두 번째 여행 때 막창을 먹지 못한 룸메가 이번에는 조금 더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막창, 하면 대구가 생각날 정도로 유명한 음식이다 보니 구마다 막창 골목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다. 우리가 찾은 곳은 대구역에서 가까운 북구에 있는 복현오거리 막창골목이다. 친절하고 깔끔하지만 오래돼 보이는 식당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막창의 가격은 서울보다 훨씬 저렴하다. 돼지 막창은 겉이 바삭하고 속이 부드러워 한입 베어 물면 곱이 톡 터져 고소함이 배어 나오고, 소 막창은 쫄깃하다. 둘 다 하나도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좋았다. 특히나 막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간단히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셋이 나눠 마셨다.
나갈 때 아이스크림 하나씩 챙겨가라고 하셔서 세가지 맛 퍼먹는 아이스크림일 줄 알았더니, 웬 아이스크림 할인점에나 있을 법한 냉동고에 돼지바, 와일드바디, 누가바, 옥동자가 나란히 들어 있다. 인심도 후한 집이다. 하드 하나씩 베어 물고 천천히 걸어서 대구역으로 돌아갔다. 집에 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야경을 즐기며 걷고 걸어 대구역에 도착했다. 기차시간까지는 삼십 분 가량 남아 있다. 건축 감리를 하러 지방 출장을 다닐 때 종종 기차역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의외로 맛이 좋아 놀랐었다. 앉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지친 발은 쉬어야 겠어서 들어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갓 튀겨 나온 감자는 바삭하고, 역시나 맛있었다. 모두 기운이 다해서 함께 는지럭거리다가 기차 타기 직전에야 계단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밤길을 달리는 기차가 다시 영등포역에 도착한 것은 밤 열두 시하고도 오 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동행과 작별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다. 룸메이트는 평소보다 집에 일찍 왔다며 행복해했다. 이렇게 저녁에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길고도 짧은 알찬 여행이다. 당일치기 여행의 좋은 점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라다. 밤을 밖에서 보내지 않아 외박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겪지 않아도 되니 좋고, 숙박비를 아낄 수 있으니 더 좋다. 짐도 가볍고, 다음 날 걱정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어 좋다. 토요일 하루 시간을 내어 여행하고 오면, 다음 날인 일요일에 또 쉴 수 있으니 좋다(아쉽게도 다음 날 둘 모두 또 출근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익숙한 동네가 아닌 완전히 낯선 도시에서 일에 대한 부담 없이 한숨 돌리고 올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다.
*대구여행 팁
1. 택시를 탄다면 카카오택시 블루를 이용하자. 서울이라면 몰라도, 여기서는 천원이 아깝지 않다. 여자끼리 간다면 불쾌해지는 경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다.
2. 가능하면 셋 이상 모아 가자. 맛있는 걸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택시비도 아낄 수 있다.
3. 여름만은 피하자.
*오늘의 가계부 (인당 약 10만원)
영등포역->대구역 무궁화호 1인 20300원
티클래스 커피 : 까눌레 3000원, 딸기 프레지에 8400원, 말차 다쿠아즈 6900원, 치즈크레이프 7000원, 오늘의 융드립 4500원(세트 할인가), 우바 홍차 6000원 두 잔(세트 할인가)
티클래스 커피->칠성할매콩국수 택시 : 5800원
칠성할매콩국수 : 콩국수 9000원, 육전 15000원
칠성할매콩국수->국립대구박물관 택시 : 11600원
서점->메리포핀스 택시 : 3900원
메리포핀스 카페 : 녹차 롤 5500원, 홍차 롤 5000원, 라떼 4000원, 디카페인 밀크티 5000원
메리포핀스->싱글벙글막창 택시 : 3700원
싱글벙글막창 : 돼지막창 9000원(*2), 소막창 11000원(*1), 소주 4000원, 맥주 4000원
롯데리아 : 감자튀김 라지 1900원
대구역->영등포역 새마을호 1인 30300원
*2019.11.3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