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운틴 투어 a.k.a. 패키지 투어
교환학생 중 갔던 미국 여행과 두 달 넘게 갔던 유럽여행 중, 단 한 번도 한국인이 가이드하는 단체투어를 가본 적이 없다. 기껏 한국을 떠나서 한국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빨리빨리 재촉하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점으로 여기저기 찍고 다니는 여행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주는 자연 풍경이 빼어난 나라. 시드니에 와서 블루마운틴 투어를 안 갈 수는 없다.
블루마운틴 투어는 보통 링컨스 락(Lincoln’s Rock), 에코 포인트(Echo Point), 씨닉 월드(Scenic World), 그리고 시드니 동물원(Sydney Zoo)로 이뤄져 있다. 투어 비용도 인당 12만원 이상으로 책정되어 있어 제법 비싼 편이지만, 네 곳을 하루 안에 자유여행으로 가기엔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여 투어를 신청하게 됐다. 링컨스 락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장소는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하루종일 비 예보가 있어 우려되는 가운데 투어가 시작되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나왔다. 집결 장소는 숙소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여서 다행이었다. 가보니 한국인 가이드와 한국인들이 가득했다. 마흔 명이 넘는 사람이 한 차에 타고 링컨스 락으로 향했다. 가이드는 중노년의 한국인이었는데, 이동하는 내내 점잖고 차분한 말투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반쯤 자면서 듣느라 기억나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블루마운틴이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기가 맑은 날에 증발하며 푸른 안개처럼 산을 뒤덮어 블루마운틴이라고 불린다는 것, 그리고 호주에서는 산불이 많이 나는데 나무들이 불에 붙으며 씨앗을 뿌리고 나무 속을 지나는 수관이 가운데로 모여 있어 불타고도 새 잎을 낸다는 것 등등이었다.
10인승 이상의 차량은 링컨스 락으로 진입하는 도로에 들어갈 수 없어 도보로 10분쯤 걸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경주가 시작되었다. 다른 투어팀이 오기 전에 먼저 가서 자리를 선점해야 사진을 찍기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 단체투어의 목적은 바로 ‘사진’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다른 투어 버스가 진입금지인 도로를 뚫고 들어와 앞서갔다. 사진을 향한 가이드들의 경쟁이 극에 달한 것이다. 거의 뛰는 것에 가까운 속도로 서둘렀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가 그렇게 빨리 걷는 것은 처음 보았다. 엄마는 여행 내내 가이드의 등 뒤에 바짝 쫓아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가장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여행 5일차 만에 가장 피곤한 오전이었다. 그래도 프로 가이드답게 사진은 멋지게 나왔다. 링컨스 락은 산 꼭대기 위에 있는 편평한 바위인데, 바위 끄트머리에서 다리를 내놓고 찍으면 마치 절벽 위에서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나온다. 포토스팟으로는 최적이다. 바위 표면에는 각종 언어로 사람들이 ‘다녀감’ 표시를 해두었는데, 한국어가 참 많았다… 산 꼭대기 바위에 ‘다녀감’ 글씨를 새겼던 옛 선비들을 생각하면 유전자에 인증문화가 박혀있는 민족인가 싶기도 하다.
과연 여기까지 찾아오는 그 수고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버스에서 내려서 뛰는 것만으로 사진 열댓장을 얻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어딘가에 갔다는 사실 그 자체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 고민은 오늘 하루종일 이어졌다. 그래도 안개가 아스라히 덮인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제법 근사했다. 사방이 고요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링컨스 락에서 떠들썩한 20분 가량을 보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15분 가량 이동하여 에코 포인트에 도착했다. 에코 포인트는 그 유명한 세 자매봉을 볼 수 있는 곳이며, 곳곳에 전망대가 있는 트래킹 코스다. 물론 이 트래킹 코스를 전부 돌았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매우 짧았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가이드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으면 좋은 포인트와 화장실 위치에 대해 설명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동시에 또 다시 뛰듯이 경보하여 그 유명하다는 포토스팟에 들어갔다. 돌아가면서 코너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좌측에 있는 세 자매봉에서 시작해서 광활하고 빽빽한 숲을 지나 우측에 보이는 절벽까지, 정말이지 절경이었다. 호주의 숲과 공원은 정말 살아 있는 듯한 생그러움이 있다. 트래킹 코스를 한 시간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니 버스 출발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블루마운틴 투어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씨닉월드 입장권이 포함된 일반권과 제외된 알뜰권.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을 때 못 보면 아쉽다며 일반권을 끊자고 했다. 오케이. 사실 투어를 다녀본 적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씨닉 월드의 한줄평이라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종류의 어트랙션 놀이공원”이라는 점이다. 그 자연은 아까 에코포인트에서 봤던 세자매봉과 절벽이 포함되어 있다. 같은 자연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셈이다. 모노레일과 케이블카에서 보는 풍경이 색다르긴 했지만, 굳이 추가하지는 않아도 되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씨닉월드에서 보낸 시간은 단 1시간이었다. 투어 내내 밀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덤이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들르는 마을로, 블루마우틴 마을 중 가장 상권이 발달한 장소라 한다. 캥거루 고기를 넣어 만든 햄버거를 파는 카페 루라가 가장 유명하고, 이외에도 한식당, 베트남 식당, 피자집, 각종 카페, 약국 등이 있다. 가이드의 설명 중 가장 귀가 트인 설명이 있었다. 바로 뜨개실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점이었다. 뜨개러로서 지나칠 수 없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성당 앞 벤치에서 하루 중에서 가장 여유롭고 한가하고 조용한 시간을 즐겼다. 도시락을 싸온 사람의 특권이었다. 메뉴는 살라미, 차이브를 넣은 치즈, 양상추, 그리고 바나나를 넣은 샌드위치다.
10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가장 중심 거리를 따라 양쪽에 각각 뜨개실 가게가 하나씩 있다. 오른쪽 길에는 손염색실과 울실을 주로 파는 ‘The House of Wool’이 있고, 왼쪽 길에는 알파카 실로 만든 각종 의류와 소품, 그리고 다양한 알파카 실을 파는 ‘Australian Alpaca Barn’이 있다. 신나게 실구경을 하고 엄마와 함께 각각 알파카 실을 사서 행복한 마음으로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약국이 있었다. 호주는 각종 물가가 다 비싼 와중에 그래도 약국 물가는 착한 편이다. 그저께 해변에서 탄 자국이 아직도 쓰라리고 아픈 와중에 엄마는 썬크림 알러지가 생겨서 아침 내내 얼굴이 부어 있었다. 먹는 알러지 약과 썬번 크림을 샀다. 엄마도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다닌 것은 처음이라 고생이다. 괜히 베낭여행을 오자고 했나 싶다가도, 즐거웠던 순간들이 내내 기억날 것을 생각하면 하나도 아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츄어리 스타일의 동물원이라 들었던 것 같다. 입장하면서 소주잔 정도 크기의 종이컵에 캥거루 먹이를 받았다. 점점이 오던 비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무게를 맞춘다고 각각 우산과 우비를 두고 왔는데, 이렇게 비가 거세게 올 줄은 몰랐다. 다행히 비가 와도 캥거루들은 밖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커다란 녀석들은 배부르고 귀찮은 표정으로 지붕 아래에 들어가 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조그만 왈라비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이런 녀석들이 다가온다.
한 녀석이 다가오길래 손에다 사료를 덜어 내밀었더니 천천히 입을 내밀어 사료 한 조각을 마찬가지로 천천히 씹어먹고, 또 다시 입을 내밀어 한 조각을 먹고, 손에 든 사료가 모두 없어지자 종이컵까지 훑었다. 그 조그만 녀석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이 손에 닿았던 감촉이 괜히 좋아 귀엽다가도, 관광객에게 먹이체험을 한다고 따로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학대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하지 않은지 꽤 되었는데, 오랜만에 동물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가도 안쓰러운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사육 환경은 썩 나쁘지 않아보였다.
캥거루 다음으로는 코알라와 웜뱃 등을 봤다. 코알라는 나무가지 사이에서 온몸을 옹송그리고 자거나 야무지게 유칼립투스 잎을 먹거나 둘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크고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이었다. 파충류 관에 들어가니 각종 뱀과 개구리, 도마뱀, 곤충을 볼 수 있었다. 아쿠아리움에는 물고기와 상어, 펭귄이 있고 따로 악어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동물원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생츄어리와 동물원 그 사이쯤에 있는 느낌이라 굳이 왔어야했나 싶었다. 그래도 유명하다니 투어 코스에 껴서 한 번은 왔지만.
마지막으로 시내로 들어오며 가이드는 시드니에서 즐길만한 장소와 맛집을 추천해주었다. 우리가 지난 나흘 간 다녀온 곳들이 많아 그래도 잘 즐기고 다녔나보다 했다. 이제 시드니에서 보낼 날이 단 이틀 남았다. 이번 투어에서 본 풍경을 종합해봤을 때, 자유여행 스타일로 간다면 대중교통을 타고 에코포인트로 가서 오전 내내 트래킹을 즐기며 세자매봉과 숲 경치를 만끽한 후, 점심식사를 즐기고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가이드도 좋고 풍경도 너무 좋았지만 같은 풍경을 굳이 세 군데 장소를 돌아다니며 찍었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한 군데에 집중하여 온전히 즐기고 와도 좋을 것 같다. 에코 포인트가 됐든, 혹은 시닉월드가 됐든. 둘 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갔다올만할 것이다.
비를 맞으며 동물원을 돌았더니 피곤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축축한 옷을 벗어놓고 라면 하나를 끓이고, 장보던 곳 근처 식당에서 롤 형태의 초밥을 샀다. 연어초밥과 아보카도 연어롤 한 팩, 후토마끼 한 팩. 엄마는 여행 초반에 굳이 외국에 나와서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냐며 쿨한 태도를 보였지만 쌀과 라면을 먹을 때 표정이 제일 좋다. 내가 다 봤다. 아무튼 한국인인 것이다.
엄마는 가이드 투어 여행을 종종 한 덕분인지 저녁이 되니 나보다 더 여유있어 보였다. 아무튼 엄마가 행복하다니 다행이다. 아직 공용공간에서 모든 활동을 마치고 방에서 잠만 자는 게스트하우스에는 적응하지 못한 듯 보이지만. 비용 절감에는 이런 측면이 있답니다. 적응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