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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02. 2024

겸사겸사 남해 한 달

팜프라촌 1일 차

상반기가 끝나고 하반기의 시작을 알리는 7월 1일. 아침 아홉 시 반에 서울에서 출발해 급하지 않게 슬렁슬렁 남해에 내려왔다. 남해군에서 한달살이를 하는 첫날이다. 보름간 호주에 간 적도, 두 달 넘게 유럽을 한 바퀴 돈 적도 있지만 한 달 내내 한 곳에 정착해 살아보는 경험은 처음이다.


남해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서가 첫 번째다. 농촌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팜프라촌’이라는 곳에서 한 달간 헬퍼로 일하는 것이다. 이곳은 농촌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단체인데, 코부기라는 집짓기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던 집들로 현재 민박업을 하고 있다. 주 4일 3시간씩 일을 돕고 한 달간 숙박을 제공받기로 했다.


하지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해가 길다. 오전에 출발해 땡볕의 더위를 지나 두 번의 휴게소를 거치고, 적은 양 한 번, 가득 한 번의 주유를 하고, 다섯 시간 반의 긴 여정을 마치고 세 시 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팜프라촌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라운지에 가보니 대표인 지황님, 멤버인 린지, 유정, 건우님이 반갑게 맞아줬다. 분명 긴 시간을 운전했는데 아직도 낮이라니. 오전의 오늘과 오후의 오늘이 다른 날인 것만 같다.


금산 아래 자리 잡은 팜프라촌의 모습


인사를 나눈 후에 팜프라촌 바로 옆 직원 숙소에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방은 오래되어 조금 낡아 마음이 편안하고, 필요한 것들을 최소로 채워 넣은 간소함이 또 마음에 들었다. 한 달짜리 템플스테이 같기도 하다. 논문을 쓴다고 하니 책상과 의자도 들여놓아 주어 감사했다. 책상 아래 빈 책장에 가져온 책들을 채우고 냉장고에는 엄마가 싸준 고추장, 된장, 초장, 콩을 넣었다. 화장대 아래 네 칸의 서랍에는 차례로 옷과 뜨개감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 가져올 때는 차 한 가득이던 짐들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짐 정리를 마치고 다시 라운지로 돌아가니 다 같이 해변에 있는 카페로 간단다. 두 차에 나눠 타고 해안가를 달려 송정솔바람해변에 갔다. 마을회관 1층의 일부를 카페로 만든 ‘오아시스 카페’가 있다. 이곳 사장님은 해외 카페에서 9년을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귀촌하여 농사를 지으며 카페를 운영하신단다. 맛을 표현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나름 맛있는 디저트는 많이 먹어보았는데, 여기 휘낭시에도 음료도 다 너무 맛있었다. 아이스로 주문한 팥라테의 팥 알갱이가 알알이 씹혀 고소하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해변을 보는데, 사람들이 슬렁슬렁 걸어오더니 해변가 앞에서 신발과 옷을 훌렁훌렁 벗고 수영복만 남긴 채로 다시 슬렁슬렁 걸어서 바다에 몸을 담근다. 산 너머에서 해가 비치며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난다. 양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팜프라 식구들도 각자 한 명씩 바다로 가더니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누빈다. 오, 이곳은 여름에 맨발에 슬리퍼가 공식 복장이구나. 언제든 바다에 발을 담그려면 말이다. 운동화에 양말까지 신고 왔지만 발 씻을 곳이 있다는 한 마디에 신나서 나도 신발 양말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파도치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고운 모래에 발이 부드럽게 빨려 들어가고, 바닷물이 발목을 간지럽히는 감각을 느끼니 이제야 남해에 온 실감이 난다.



바다와의 잠깐의 조우를 뒤로 하고 발을 닦고 말리고 앉아있는데, 함께 온 이들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울에서는 모든 행동과 일이 바삐 일어났는데 남해에서는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각자 이야기를 나누거나 춤을 추거나 노트에 글을 쓰거나 평상에 누워 쉰다. 바람이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를 나르다가 해가 지며 싸늘해지자, 그제야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간만의 저녁회식인 모양이다. 낙지와 돼지고기를 매콤한 양념에 볶아낸 데다 치즈를 곁들였다.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니 아까보다 더 친해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팜프라로 돌아왔다. 옆방 식구인 건우님에게 보일러를 켜고 끄는 방법을 배웠다. 이곳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니 밖에 있는 기름보일러에서 일일이 온수를 켜고 끄는 방법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에너지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 와서 다시 배운다. 방으로 들어와 샤워를 마친 뒤 나가서 보일러를 끄고, 돌아와 이부자리를 펴놓고 오늘자 기록을 했다. 이틀 치의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헬퍼 일은 수요일부터 하기로 했으니, 내일은 뭘 하며 시간을 보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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