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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24. 2024

고양이와 뜨개와 자연이 있는 풍경

남해에서 계속 살아가는 이유들

어제부터 동네에 폭염주의보이니 물을 많이 마시고 노인 분들은 외출을 자제하라는 방송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제야 여름인 것 같은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손님이 없고 비가 오지 않는 이 시기를 놓칠 수는 없다. 아침 여덟 시 반에 출근해 오늘도 모자와 토시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청소까지 마치고 코부기 1호의 데크만 오일스테인으로 칠했는데, 나머지 데크는 초록색 물때가 제법 많이 낀 상태라, 일단은 1호의 벽부터 칠하기로 했다. 벽의 스테인 칠도 꽤 벗겨져 나무가 희게 보일 지경이다.


두 시간 작업하고 나니 열 시 반이다. 해가 떠서 그새 쨍쨍해졌다. 출근할 때 동네 언니가 태국 여행에서 사 온 아이스티를 챙겨 왔는데, 잠깐 쉬어갈 때 시원하게 타 마시기로 했다. 라운지에서 잠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달달하고 진하게 탄 아이스티를 마시고 시원한 물도 한 잔씩 마셨다. 10분만 쉬자며 들어왔는데 5분을 추가로 쉬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땡볕에서 작업하니 더위에 강하다는 유정 님도 힘들었나 보다.



한 시간을 더 작업하고 나니 코부기 1호의 앞면과 뒷면을 다 칠할 수 있었다. 옆면은 너무 높아 나중에 가설비계(아시바)를 설치하고 작업해야 할 것 같아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거의 열두 시가 다 된 시간이라 점심을 먹으려는데, 어제 두 끼를 다 직접 해 먹고 오늘 땀 흘리며 작업까지 하고 나니 도저히 식사를 차려먹을 의지를 찾을 수 없었다. 도시락을 먹는 유정 님은 라운지에 두고 건우 님과 고민하다가 남해 청년 축구팀 '유배투스'의 멤버가 운영하는 피자집인 도우에 가보기로 했다. 매번 지족마을로 넘어갈 때마다 건물이 예뻐서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이다.


남해는 작은 동네라, 여기서 만난 사람을 저쪽 동네 가서 만나기도 하고, 워낙 N잡을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여기서 친해진 사람이 저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도 하다. 두모마을 공동주방 2층에 사는 성우 형(왠지 모르겠지만 성별 불문하고 모두가 그를 성우 형이라 부른다)은 여행을 많이 다녀서 두모마을에서도 만나보기 힘들었는데, 하필 우리가 방문한 오늘이 성우 형이 도우에서 일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홀로 들어가자마자 낯익은 얼굴이 보여 반갑게 인사했다. 주문을 하고 나니 두 번째 메뉴가 나올 때 도우 사장님이 직접 가져다주시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어딜 가든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마법 같은 동네다.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고,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고 와서 오랜만에 먹는 외식이라 아주 꿀맛이었다.



도우에서 나오는데 바로 옆 카페 안화에 '빙수 포장 가능'이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지나칠 수 없었다. 혼자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셨을 유정 님도 생각나, 팥빙수를 하나 포장해 가기로 했다.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다음에는 여기서 시간을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달한 빙수에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역시 몸을 많이 움직인 날엔 남이 해준 밥과 디저트가 최고다.



오후에는 팜프라 멤버인 유정 님과 준호 님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일상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이 분들이 왜 남해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듣다 보면 달리 보이는 부분들도 있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도 각자 다르게 대답하는 부분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들 각자의 가치를 찾아서 남해에 오고, 이 안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있다. 때로는 실망하기도, 때로는 고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관계가 좋아서, 가벼이 만나는 인연들이 좋아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게 좋아서, 매일 보는 자연이 좋아서, 계속 남해에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진 인터뷰가 끝나고 지황 님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떴다. 남해에 와서 처음으로 뜨개감을 꺼내어 한 코 한 코 뜨개를 해보았다. 아, 나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좋아했었지. 아무 생각 없이 논밭을 바라보며 뜨개를 하다가, 노트북을 꺼내서 좋아하는 영상을 보면서 뜨개를 이어나갔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고양이들이 제각기 편안한 포즈로 드러누워 있다. 오래간만에 택배가 많이 왔는데 그것도 수직공간이라고 낑깡이가 올라가 배로 박스를 구기며 앉아있다. 고양이와 뜨개와 자연이 있는 풍경이라니. 나도 이 시간을 기억하며 남해에 다시 오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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