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씨의 공장기 #1
카페로 가득한 안목해변은 원래 자판기커피로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약 20년 전 국내에 흔치 않던 헤이즐넛향 커피를 자판기에서 팔았고, 이게 유명세를 타며 커피축제로, 그리고 카페로 퍼져나갔다고.
해변에 다다르기 전 코에 먼저 와닿는 향은 원두 볶는 냄새다. 약간은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이 향은 코 끝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커피향을 따라 걷다보면 쨍하게 파란 바다가 먼저 보이고, 끝없는 자동차와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관광객 뿐 아니라 강릉시내 직장인들도 식후 커피를 즐기러 안목해변으로 나오는데, 주말에는 특히나 사람이 많다. 오후 1시 즈음에 이 곳에 도착하면 바다를 볼 수 있게 통유리창을 설치한 카페 곳곳마다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차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테라스 밖 하얀 커튼 사이로 파란 바다와 너울치는 하얀 파도가 보인다. 곧 책과 노트로 눈을 돌리지만, 고개만 들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퍽 마음에 위안을 준다.
해변을 떠나 10분쯤 걷다보면 아파트 단지 앞에 ‘안목책방’이 있다. 손님이 데려온 큰 개가 책방주인보다 먼저 맞이해준다. 매대에 있는 책마다, 책꽂이마다 노트를 하나씩 붙여두었다. 작가가 쓴 노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방주인이 쓴 것이다.
책을 소개하는 글, 책에서 발췌한 글, 책을 보고 든 생각을 적은 글, 글, 글. 마음이 평온해진다.
지극히 책방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책들의 행렬이 흥미롭다. 관심있던 책들이 서가에 놓여있는 걸 보니 괜시리 반갑다. 시나몬 가루를 뿌려 향이 좋은 카푸치노 한 잔이 넉넉한 양으로 나왔다.
여행 첫 날에 이 곳에 왔더라면, 여행 내내 이 곳에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선뜻 맛있는 크로와상을 나눠주는 책방주인의 친구가 있어 감사하고, 새해 선물이라며 새하얀 손수건을 주는 주인의 얼굴을 마주보니 어느새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d. 2018.12.29.-2019.1.1. 강릉여행 중에서
공장기(空場記) :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
우리는 매일 여행을 하며 살아갑니다. 집에서 회사로, 학교로, 카페로, 서점으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여행에서 만난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