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씨의 공장기 #6
문래동은 철공소와 작은 공장들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동네이다. 싼 월세와 널찍한 작업공간, 그리고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숙련된 철공소를 찾아 젊은 작가들이 이 동네 곳곳에 공방을 차렸고, 이것이 모여 현재의 문래예술창작촌이 만들어졌다.
사실 문래동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그 이름에 의문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들은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보다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방이 가득한 거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몇몇 특색 있는 가게들과 철로 만든 거리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철공소들의 업을 생각하여 ‘예술’을 빼고 ‘문래창작촌’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명칭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예술’을 볼 수 있는 가게가 몇 있다. 기존 철공소의 설비를 최소한으로 치우고 펍으로 만들거나, 철로 만든 공작품과 조형물이 곳곳에 놓여 있거나, 혹은 예술가들이 모여 운영하는 가게가 그것이다.
몬스터박스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술집이다. 2015년에 오픈한 이 가게는 원래 세 명의 작가가 함께 시작했지만, 지금은 윤 작가가 혼자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간판 없이 ‘몬스터’주식회사의 샐리가 플라스틱 맥주 ‘박스’에 매달려 간판 자리에 붙어있었는데, 올해 초 무슨 일인지 태풍에도 무사했던 샐리가 떨어져버렸다고 한다.
혼술하기 딱 좋은 8인용 바 테이블이 주된 공간이고, 안쪽에도 4인석 하나, 2인석 2개가 있는 아담한 가게이다. 안주는 예술가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대부분 저렴하고, 부산 출신 윤 작가의 음식 솜씨가 좋아 양이 푸짐하고 맛있다. 종종 철마다 올라오는 특선메뉴가 또 별미다. 겨울에 스지오뎅탕이나 과메기를 주문하면 소주가 절로 땡기는 맛이다. 소고기를 잔뜩 넣어 오랜 시간 정성들여 만든 소고기 토마토스튜도 이 가게의 스테디셀러이다.
주인이 고양이를 세 마리나 모시는 집사이고, 문래동 고양이들의 식당과 안식처 역할을 맡고 있다. 혼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치즈색 고양이 아미가 와서 다리에 몸을 비빌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몬스터박스는 올해 3월 8일을 기점으로 5년 간의 운영을 마치고 문래동을 떠난다고 한다. 아마 당분간 휴식기를 가지고, 다른 동네에 다시 새 보금자리를 찾을 것이다.
d. 2015.05-2019.03 오랫동안 애정하던 가게, 몬스터박스를 떠나보내며.
공장기(空場記) :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
우리는 매일 여행을 하며 살아갑니다. 집에서 회사로, 학교로, 카페로, 서점으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여행에서 만난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