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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an 10. 2019

문화역 서울 284 x 커피사회

마닐씨의 공장기 #2


여성소비총파업 날을 맞아 무료전시를 찾아 서울역으로 갔다. 커피가 한국에 들어온 개화기로부터 시작된 커피의 역사, 근대기 경성의 다방문화, 세계의 커피역사, 커피 시음, 그리고 커피과 관련된 작품 전시 등 알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는 전시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시돼 있는 박길종 작가의 <커피, 케이크, 트리> 작품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트리 모양의 조형물 주위로 하단부에는 커피와 관련된 아카이빙 자료가 놓여 있고, 그 위로 기차 장난감이 커피를 싣고 달리고 있다.

트리를 지나면 <제비다방과 예술가들의 질주>라는 제목으로 원형의 전시공간 안에 근대 예술인들의 커피에 관한 글과 공간에 대한 자료가 펼쳐진다. 그 중 경성 지도에 이상의 집, 제비다방, 미쓰비시 백화점 등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1930년대 경성에서는 커피를 파는 다방이 (주로 남성)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교류의 장이 되어 수많은 창작물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나 랄까, 저작물들 중 많은 수가 다방 여성종업원의 신체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 하며, 커피 한잔과 여성이 동일한 가치라는 등 천박한 여성관을 자랑스레 써놓은 글하며,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여성대상화를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그 다음 방에서는 <돌체 2018> 전시가 이어진다. ‘360 sounds’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서브컬쳐 크리에이터들이 음악, 디자인, 사진 등으로 13년간 교류를 해왔다고 한다. 이들의 아카이빙 자료를 통해 서울의 서브컬쳐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이 방에서 흐르는 음악을 타고 서측 복도로 나오면 긴 테이블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오아시스>라는 공간이다.
<티룸>에서 드립커피를 받아 마시는 사람, 자판기에서 100원짜리 뜨거운 커피나 10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뽑아 마시는 사람, 책 읽는 사람, 이야기 나누는 사람, 모카포트로 커피를 뽑아주는 사람… 야외 테라스 문으로 나가 RTO로 가면 미국 군인들의 전투식량과 커피를 전시한 <커피와 밀리터리> 전시가 이어진다.

2층으로 올라가니 나왕 합판에 니스칠로 마감한 다양한 형태의 나무 박스가 복도에 나란히 놓여있는데, 이는 <스몰 스토리지 시리즈>이다. 아기자기하게 수납된 커피용품들이 감성과 지갑을 자극한다.

커피를 소재로 한 여러 예술작품을 지나면 ‘그릴’이라는 큰 공간이 나온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와 레트로한 창문이 인상적이다. 가운데 커피 바가 있어 서울의 유명 카페에서 온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들고 있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리가 간 날은 ‘대충유원지’의 차례였다. 각 시간마다 한정된 수량으로 커피를 나눠주는데, 아쉽게도 사람이 많아 커피를 맛볼 수는 없었다. 창틀에 기대 서서 공간과 바리스타와 초록빛 나무와 옛 거울에 눈길을 주다가 전시실을 나섰다.


d. 2018.1.6. 날씨 좋은 일요일의 서울 나들이




공장기(空場記) :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

우리는 매일 여행을 하며 살아갑니다. 집에서 회사로, 학교로, 카페로, 서점으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여행에서 만난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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